금융사들이 경제 활성화 법안과 노동 개혁 법안 입법을 촉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관제 모금’ 논란이 불거졌던 청년희망펀드처럼 실적을 채우기 위해 반(反)강제식으로 임·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했다간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데다, 이번엔 일부 임원들마저 서명 참여를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A은행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열린 임원 간담회에서 임원급 인사 전원이 서명운동에 참여할 것을 주문했다. “전(全)임원이 서명에 참여했다”는 내용을 보도자료로 배포해 실적 홍보에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일부 임원들이 이례적으로 “강제 서명엔 동참할 수 없다”며 CEO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결국 A은행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각 기업의 서명 건수를 매일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동조합도 서명 운동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 20일 각 회원사에 공문을 보내 “서명운동은 경제 법안 외에 노동4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다”며 조합원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임직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길거리 서명'에 나서며 여론 조성에 나서자, 금융협회들은 더 적극적으로 서명을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연합회 등 일부 협회는 서명 전용 부스를 설치해 직원들의 서명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할 계획이다. 현재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등 일부 금융협회는 각 회원사의 서명 실적을 모아 대한상공회의소에 보고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서명 운동이 또 다른 갈등 요소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모습이다.

청년희망펀드에서 연봉 반납 등 정부가 여러 차례 ‘만만한’ 금융권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직원들의 인식이 뿌리깊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아직까지는 일부 협회 직원들과 임원들만 서명에 참여했지만, 영업점이나 본점 부서별로 서명 용지를 배포하기 시작하면 직원들의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연봉제 도입을 포함한 성과주의 도입 등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더미인 상황에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