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는 아주 특별한 연극이 펼쳐진다. '빛의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권일·김정민·안병식 등 연극 무대를 주름잡는 배우들이 나서 '빛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한 설전을 벌이는 내용이다. 자칫 따분할 수 있는 주제지만 1000장의 표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 연극은 카오스 재단이 주최하는 '빛, 색즉시공'이라는 과학콘서트의 일부이다. 카오스 재단은 매년 상·하반기 각 10회씩의 대중 과학 강연과 두 차례의 초대형 과학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콘서트가 벌써 8회째이다.
카오스 재단은 '과학의 공유'를 모토로 2014년 11월 설립됐다. 전자상거래 업체인 인터파크 이기형 회장이 만든 비영리 재단이다. 성공한 창업자가 왜 돈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과학에 주목했을까. 이 회장은 "한국에서 과학은 소수만의 행위, 나와 관련없는 행위 정도로 여겨진다"면서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과학에 관심을 갖고 있고, 카오스 재단은 이런 사람들이 과학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중개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과학 대중화를 위해 재단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한국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평소에도 과학자들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노정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정하웅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교수 등 카오스 재단의 운영을 결정하는 과학위원회 위원들도 이 회장이 직접 챙긴다. 이 회장은 지난해 8월 열린 7회 과학콘서트에는 직접 무대 위에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 회장이 석학들을 찾아 의논하며 직접 대본을 쓰는 등 열성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과 카오스 재단의 시도는 교육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던 과학을 콘텐츠 산업으로 이끄는 역할도 하고 있다. 카오스 재단 관계자는 "기존의 대중 강연은 대부분 무료였지만, 지난해 과학콘서트부터는 관람권을 유료로 팔아 수준을 더욱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티켓값이 2만원이라 청중이 거의 없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과학에 관심이 많은 관객이 대거 몰리면서 과학 콘텐츠의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카오스 재단은 20일 과학콘서트에서 연극 이외에 빛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레이저 퍼포먼스, 윤성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와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의 대중 강연 등도 선보일 계획이다. 이 회장은 "과학 사랑을 꾸준히 전파해,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 10만명을 모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