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가능성도 충분하고, 사업도 잘되는데 왜?”

최근 한국항공우주(KAI)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대기업들이 연이어 주식을 매각하고 있다. 방산 업계에선 “한창 잘 나가는 기업의 주식을 왜 팔지"라며 의아해 하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16일 “최근 한화와 두산의 지분 매각을 보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현금 유동성이 필요한 두산이 지분을 파는 것은 이해해도 한화가 먼저 판 것은 이해가 잘 안간다”고 말했다.

◆KAI 지분 팔고 손 턴 한화, 두산…암초에 걸린 민영화

한화테크윈은 지난 6일 보유하고 있던 KAI 지분(10%) 가운데 4%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로 매각했다. 한화테크윈은 블록딜로 2800억원 가량의 현금을 확보했다.

DIP홀딩스(두산그룹의 자회사)도 11일 보유하고 있던 KAI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주당 6만2500원에 팔아 3050억원을 확보했다.

한화테크윈과 DIP홀딩스의 지분 매각은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 실현과 외국 유망 사업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테크윈은 매각 자금으로 주력사업인 엔진 부품 사업을 확대하고 관련 업체 인수 합병(M&A)에 나설 계획이다. 두산은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부문 매각에 이어 이번 KAI 지분 매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새롭게 뛰어든 면세점 사업 역량 강화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대주주들의 지분 대량 매각 이후 KAI의 주가는 폭삭 주저앉았다. 작년 말 8만원을 바라보던 주가는 6만5000원대로 18% 가량 떨어졌다.

주가 하락보다 더 큰 문제는 산업은행의 ‘KAI 민영화 프로젝트’가 암초에 걸린 것이다.

정부는 작년 10월 금융개혁회의에서 산업은행에게 출자전환기업 5곳 등 비금융사 91곳의 지분을 2018년까지 매각하도록 했다. 하지만 한화에 이어 두산까지 유력한 인수후보들이 이탈하면서 산업은행의 지분 매각은 쉽지 않게 됐다.

한국항공우주(KAI)가 개발한 T-50 훈련기.

◆ ‘KAI, 너무 높게 날아서 탈?’

KAI는 항공기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방산업체다. KAI는 1999년 정부 주도 구조조정에 의해 대우중공업,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항공 3사의 항공 부문을 통합해 설립됐다.

KAI의 사업은 방위산업과 민항기 부품 제작으로 나뉜다. 방위산업이 매출의 67%, 민항기 부품제작이 나머지 33%를 차지한다.

KAI는 2015년 한해동안 최고의 영업 실적을 올렸다. KAI는 작년 소형무장헬기(LAH, Light Armed Helicopter)와 소형민수헬기(LCH, Light Civil Helicopter) 본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가 1조6000억원이나 되는 대형 사업이다. 작년 연말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본계약도 체결,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미국 공군 수출형 훈련기(T-X) 사업자로 선정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T-X 사업은 노후한 미국 공군 훈련기 350여 대를 교체하는 사업으로 KAI와 미국의 록히드마틴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T-X 사업자는 2017년 결정된다.

수리온 파생형헬기 개발, 한국형 발사체 총조립, 차세대 중형위성 개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투자업계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성사될 경우, KAI의 매출규모는 현재 3조원 수준에서 2030년 2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성장 잠재성이 주가에 반영, 인수할만한 기업이 잘 없다는 것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민간업체가 인수하기엔 덩치가 너무 커졌다”고 말했다. 방위산업체라 해외 매각은 아예 불가능하다.

◆ KAI 민영화 시나리오는?

KAI 인수 후보로는 삼성, 현대차, 한화, 두산이 꼽혔다. 이 가운데 두산은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손 털고 나왔다. 삼성은 방산 계열사였던 테크윈과 탈레스를 한화에 매각, 방산에서 손을 똈다.

업계의 시선은 2대 주주인 현대자동차(지분 10% 보유)로 쏠린다. 한화테크윈도 지분을 대량 매각했지만 아직 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두고 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화그룹도 이번 주식 매각과 KAI 인수는 별개라는 태도다. 한화 관계자는 “KAI 인수전에 손을 뗀 것은 아니다. KAI 매각 발표가 나오면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특정 기업의 인수가 불투명해지자 KAI의 대주주가 꼭 대기업일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지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록히드마틴의 주식 94%는 1624개나 되는 기관 투자가들이 보유하고 있다. 보유 지분율 기준 상위 3개 기관을 제외하면 모두 5% 미만의 지분을 갖고 있다. 국내 은행이나 보험사 등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다면 대기업이 최대 주주가 될 필요는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