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등 금융 공기업들이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신규 채용이 줄어드는 것을 완화할 방안으로 전 금융권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는데, '신의 직장'이라는 말을 듣는 금융 공기업 가운데 일부가 민간 금융회사보다 월등하게 유리한 조건을 정했기 때문이다.

12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캠코·예금보험공사 등 10대 금융 공기업은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첫해인 만 55세에 평균적으로 기존 임금의 82%를 지급한다. 이에 비해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은 평균 65%만 지급한다. 이처럼 방만한 임금피크제를 채택한 금융 공기업들은 "작년 말에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라 바꿀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일부 금융 공기업이 지나치게 '방만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면서 "공기업 평가 등에 반영해서 임금 인상률 등을 낮추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캠코, 매년 임금 15%만 삭감하는 셈

금융권은 2000년대 중반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58세 정년을 기준으로 55~57세까지 3년간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곳이 많았다. 올해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임금피크제를 시작하는 나이, 기간 등을 변경하는 개편이 필요했다. 대부분이 57~59세 3년간으로 바꾸거나, 55~59세 5년간으로 연장했다.

금융 당국은 이런 점을 감안, 회사별로 다른 임금피크제를 비교하기 쉽도록 퇴직 전 5년(55~59세)간 지급되는 급여를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57~59세 3년간만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에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지 않는 55~56세 2년간은 기존 임금을 100%씩 지급받는 것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캠코는 57~59세 3년간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데 첫해(57세)에는 기존 임금의 90%, 2년 차와 3년 차에는 각각 67.5%를 지급한다. 55~56세 2년간은 임금피크제를 적용하지 않으니 기존 임금을 100%씩 받는 셈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5년간 총 425%(100+100+90+67.5+67.5)를 받는 셈이다.

10대 금융 공기업의 임금피크제를 살펴보면, 퇴직 전 5년간 급여 지급률이 평균 338%에 달했다. 4대 시중은행 평균(245%)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캠코(425%)가 가장 높았고, 다음이 금융감독원(375~400%)이었다. 금감원은 팀원이 400%, 팀장 390%, 부서장은 375%를 지급받는다. 기업은행(395%), 예탁결제원(390%), 예금보험공사(385%)까지 5곳은 350%가 넘었다.

인건비 늘어나는 기업은행

기업은행은 애초 5년간 260%였던 임금피크제를 3년간(57~59세) 195%로 변경했다. 지급률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임금피크제에서 제외된 55세와 56세 때는 100%를 지급받기 때문에 5년 기준으로 보면 395%로 늘어났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를 반드시 5년간 실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여러 상황을 감안해 적절하게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도 마찬가지다. 5년에 300%였던 기존 임금피크제를 3년 190%로 변경하는 바람에 5년 기준으로는 390%가 됐다.

기업은행은 임금피크제를 개편하면서 55~59세 직원에 대해 올해부터 앞으로 6년간 인건비 1450억원 추가 부담이 발생하게 됐다고 금융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임금피크제의 취지가 고액 연봉을 받는 장기 근속자들의 인건비를 줄여서 신규 채용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인데 무색하게 됐다. 금융 공기업 간에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불거진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금융 공기업들의 방만한 임금피크제로 정년을 채우려는 직원이 늘어나면, 신규 채용을 위한 재원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면서 "민간 금융회사들과 격차가 너무 큰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