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올해 주식시장 폐장일(30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우리나라 대표 주가지수인 코스피는 여전히 2000포인트 밑을 헤매고 있다. 며칠 사이 대단한 호재가 없다면 올해도 주가는 지지부진하게 끝날 가능성이 크다. 2007년 7월에 사상 처음으로 2000포인트 시대를 연 이후, 주가지수 그래프는 1800~2100포인트 사이에서 맴돌고 있다. 이 모습이 마치 박스 속에 갇힌 것 같아서 '박스피(박스+코스피)'라는 오명(汚名)까지 붙었다. 올해도 이 박스피에서 탈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박스피 탈출 가능성이 컸던 터라 투자자들의 아쉬움이 더 크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전례 없는 동시다발 양적완화(QE) 정책을 펼쳐 글로벌 유동성이 넘쳐났고, 이 돈이 우리나라에도 흘러들어 상반기 증시 거래 대금이 작년보다 50% 급증한 9조원에 달했다. 덕분에 올 4월 말 코스피가 2189.54포인트까지 치솟아 박스권을 뚫고 더 나갈 기세였다. 하지만 증시 랠리는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올 8월 중국의 기습적인 위안화 평가 절하를 시작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 우려까지 겹치면서 코스피는 8월 24일 1800포인트까지 급전직하했다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내년은 올해와 다를까. 증시 전문가 열 중 아홉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내년에 미국이 금리를 본격적으로 올리기 시작하면 그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에 투자했던 외국인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본격 회귀할 텐데, 우리 증시는 이 흐름을 막을 만한 특별한 매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도 '박스피' 꼬리표 못 뗐다

올해 독일·프랑스 등 유럽 대표국 증시는 10% 가까이 올랐다. 중국 증시도 지난여름 두어 차례 출렁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상하이지수가 연초 대비 12.2% 오른 상태고, 우리나라 코스닥과 비슷한 기술주 중심의 중국 선전 주가 상승률은 67%에 달하는 등 세계 주요국 주식시장은 상당히 역동적인 한 해를 보냈다.

특히 일본 증시는 세계 투자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2011년 말 8000포인트대였던 닛케이지수가 올해 2만 포인트까지 뚫고 올라서는 등 4년 새 141%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와 시가총액 규모가 비슷하고 대표 종목이 경쟁 관계에 있어 비교 대상이 되는 대만 증시도 올해 큰 하락장을 경험하긴 했지만 2011년 말 대비 50%의 높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이에 비하면 한국 증시는 올 들어 이달 24일까지 3.9% 오르는 데 그쳤다. 상승률이 전 세계 증시의 평균치(-2.1%)보다는 높았지만, 주가 최고치가 2011년 최고치를 뚫지는 못했다.

추가 상승의 고비 때마다 외국인이 '변심'하고 돌아서면 속수무책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는 올 4월 한때 하루 7000억원어치가 넘는 한국 주식을 사들이다 방향을 전환해 주가 흐름을 꺾어놨다. 연말이 될수록 외국인의 매도 행렬은 거세지고 있다. 올 들어 이달 24일까지 국내 주식을 3조4000억원 넘게 순매도, 연간 누적 기준으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순매도를 기록했다.

이런 움직임은 내년에도 계속돼 우리 증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제로금리에 들어선 2008년 말부터 올해 11월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이 사들인 주식은 총 83조원어치. 미국 금리가 본격적으로 올라가면 막대한 매물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LIG투자증권 지기호 연구원은 "2004~2006년 미국 금리 인상기 때도 외국인은 관망세를 유지하다 인상 끝 무렵 본격적으로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증권사 10곳이 예상한 내년 코스피는 1849~2223포인트로, 지난해 말 내다본 올해 전망치(1860~2187)와 비슷하다.

◇삼성전자·현대차 의존도 높아 태생적 한계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중국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기업 이익 증가율이 떨어지고 주가도 정체되는 한계를 막을 길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증권 김용구 연구원은 “8할이 수출주로 구성된 국내 증시의 특성상 글로벌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기업들의 수출이 부진해지고 기업 실적이 떨어져 증시 불확실성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주가지수 산출 방식도 박스피를 뚫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우지수의 경우 각 업종을 대표하는 초우량 30개 종목으로 구성돼 움직임이 가볍지만, 코스피는 750여개 보통주 전체의 주가를 반영하기 때문에 너무 무겁다. 또 코스피는 주가를 시가총액 비중에 따라 가중평균하는데, 다우지수는 30개 종목의 주가를 모두 합산한 뒤 30으로 나눠 계산한다. 24일 현재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시가총액 합계가 전체의 23%를 차지, 코스피지수는 사실상 ‘삼성전자·현대차 지수’나 다름없다. 최근 활력을 잃어버린 국내 간판 대기업의 모습이 증시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