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인천 송도에 85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을 세운다. 바이오산업은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스마트폰과 중국이 턱밑까지 추격해온 반도체 산업을 대신할 삼성의 신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2018년 말 새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삼성의 바이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단숨에 세계 1위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전문기업(CMO)으로 도약한다. 급성장하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 반도체와 스마트폰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최대 바이오 의약품 공장 착공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1일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에서 박근혜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3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삼성이 IT(정보기술) 사업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바이오 의약품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다"면서 "바이오 헬스 산업은 우리 제조업의 혁신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의약품은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다. 독성과 부작용이 있고, 난치성 질환에는 큰 효과가 없다. 하지만 바이오 의약품은 단백질, 세포 등 생체 물질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 특히 암·자가면역질환·치매·아토피·당뇨병 등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 10개 중 7개가 바이오 의약품이었다. 지난해 1790억 달러 규모였던 전 세계 바이오 의약품 시장은 2020년 2780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완공 예정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은 18만 리터(ℓ)의 바이오 의약품 원액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현재 가동 중인 제1공장과 내년 3월 가동 예정인 제2공장을 합치면 모두 36만 리터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다. 이들 공장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바이오 의약품을 수주받아 대신 생산하는 것이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은 "제3공장 가동과 동시에 스위스 론자의 26만 리터를 제치고, 세계 1위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전문기업이 된다"면서 "생산량, 매출, 이익 모두에서 압도적인 1위에 올라 (2위가 따라올 수 없는) 초(超)격차를 가진 챔피언이 되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바이오 의약품 시장의 후발 주자이다. 론자나 독일 베링거인겔하임 등에 비해 20년 가까이 늦었다. 하지만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투자로 늦은 출발을 극복하고 있다. 2011년 바이오로직스 설립 이후 지금까지 3조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다. 현재 바이오 의약품 생산 시장은 수요가 공급의 60~70%에 불과한 공급 과잉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5년 뒤면 수요가 공급을 추월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김태한 사장은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바이오 의약품이 100여개 정도인데, 개발 중인 의약품은 1000개가 넘는다"면서 "바이오 의약품 공장은 건설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급증하는 수요를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성공 신화 재현 노려
삼성이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의 성공을 자신하는 것은 반도체 산업과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바이오 의약품은 불순물이 거의 없는 순수한 물을 사용하고, 청정 공간(클린룸)이 대규모로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도체 사업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삼성이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 경험을 살려, 제3공장의 건설 공기(工期)를 대폭 줄이고 생산 비용은 경쟁사의 절반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업운영 담당 상무는 "1980년대만 해도 모든 전자 회사가 자기 회사에 필요한 반도체를 직접 만들었지만, 현재는 삼성전자 등 소수의 기업이 전 세계 반도체 대부분을 위탁 생산하고 있다"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 반도체 신화를 재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