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동리 동국제강 포항 공장. 총면적 83만7860㎡에 제강·형강·봉강·후판 등 공장 4곳과 연구 시설 한 곳이 모여 있는 동국제강의 주력 공장이다. 그중 후판 공장은 생산 직원 600여명이 조선·건설용 두꺼운 철판을 연간 190만t 생산하던 곳이다. 하지만 이날 후판 공장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동국제강은 조선 산업 불황과 후판 공급 과잉을 견디다 못해 지난 8월 이 공장을 폐쇄했다. 일부는 다른 공장으로 전환 배치됐지만, 사내 협력업체 직원 300여명을 포함한 상당수는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직원들이 대리기사 시장으로 몰려나오면서 요즘 포항은 대리기사가 넘친다. 이 지역 A대리기사 업체 관리 담당 이용화(51)씨는 "올 초만 해도 포항 대리기사 수가 500명 안팎이었는데, 지금은 100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울산은 거제와 함께 국내 최고 부자 도시로 꼽히던 곳이다. 하지만 조선·석유화학·자동차 3대 축이 깊은 불황에 빠지면서 지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최찬호 울산상의 경제총괄본부장은 "지역 상공인들이 '이러다가 5년 안에 울산이 미국 디트로이트처럼 망하고 말 것'이라는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2008년만 해도 한밤중까지 불을 밝히던 경남 통영 일대 조선소들은 이제 건조 중인 배를 찾기 어렵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남 거제, 전남 영암 등 대표 산업 현장에서 포착되는 위기 신호가 심상치 않다. 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서울 빌딩가(街)에서도 위기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10일 서울의 대표적 오피스 타운인 서울 테헤란로, 코엑스에서 강남역까지 3.3㎞ 구간에 도열한 빌딩 100여동 가운데 42곳에 '임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입주할 기업을 찾지 못해 몇개층씩 비어있는 빌딩들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 중심 제조업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장기 저성장 늪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제조업 전체 매출은 사상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속칭 '좀비 기업'이 전체 기업의 32%(2014년 기준)에 달한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장기 불황에도 정치권은 싸움으로 날을 새우고 있어 구조 개혁에 필요한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