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도 차량 산업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장현교 현대로템 창원공장장(전무)과 성신 RST, 케이비아이테크 등 주요 협력사 대표들이 26일 경영난을 호소하며 존폐 기로에 선 철도 제작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국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장 공장장은 "최근 해외 수주가 급격히 감소했다"며 "중국과 일본, 미국, 프랑스 정부가 해외 철도 수주 지원 사격에 나서 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자국 철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최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동남아시아에 100억달러(11조원) 규모의 인프라 대출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일본도 가만 있지 않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협조, 아시아 인프라 확충에 1100억달러(127조원)를 지원하겠다고 반격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의 아시아 인프라 투자는 건설과 교통망 등 모든 것을 망라하는데, 자국 건설사, 철도 업체의 수주를 참여 조건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2014년 현대로템의 철도 부문 매출은 1조7000억원이었다. 해외 수주는 6000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현대로템의 해외 수주는 2012년 1조7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1조4000억원으로 줄었고, 2014년엔 다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경영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현대로템은 올해 3분기까지 철도 부문에서만 17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올해 신규 수주는 2500억원, 해외 수주는 800억원에 불과하다.
정하준 국내영업팀 부장은 "국내에선 업체의 수준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최저 입찰가를 제시한 업체에 일감을 준다"며 "중국과 미국이 외국 업체에게 장벽을 치는 것과 대조적"이라 말했다. 미국은 철도 차량 제작 비용의 60%를 자국 자재를 쓰도록 한다. 중국은 중국 업체가 포함된 합작 법인에만 철도 차량 공급을 허용한다.
한국은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가입 이후 정부기관 발주를 국제 공개경쟁 입찰 방식으로 하고 있다. 2003년 인천공항공사 순환열차(IAT) 사업은 일본 미쓰비시가 수주했고, 2008년 대구시 3호선 공사는 일본 히타치가 맡았다.
장 공장장은 "국내 철도 차량 시장 규모는 연간 5000억~6000억원 수준으로 세계 철도 차량 시장의 1%에도 못 미친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저가 입찰제에 기반한 가격 경쟁은 국내 업체에겐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장 공장장은 "정부가 올해 3월 도시철도법을 개정, 노후 차량 사용 시한 규정을 삭제한 것도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개정된 도시철도법은 25년이던 철도 차량 수명을 무기한으로 연장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국내 철도 산업이 수익성 악화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이대로 가면 현장 근로자 8000명 가운데 절반이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