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4일 발표된 올 하반기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의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업권 기간을 5년으로 한정(限定)한 법이 처음 적용되면서 탈락한 롯데와 SK는 직원들의 고용 문제와 1000억원대에 이르는 재고 물량 처리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계에서는 수십 년간 아무 탈 없이 잘 운영해온 사업을 하루아침에 그만두라는 것은 '테러 수준의 공권력 남용'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최근 하이난(海南)섬에 세계 최대 규모 면세점을 연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 시내에 한국을 모방한 대형 면세점 개장을 적극 추진해 자국 면세점 시장으로 외국인 고객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일본은 도쿄 번화가인 긴자(銀座) 일대에만 내년 3월까지 대형 면세점 4개를 오픈한다. 전문가들은 "'5년 한시법' 철폐와 공정한 선정·심사 기준 등을 마련하지 않으면 한국·중국·일본 동북아 면세 3국 전쟁에서 우리만 패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5년 한시법'으로 면세점 성장판 상실"
산업계가 이구동성으로 꼽는 가장 큰 걸림돌은 '5년 한시법'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중국·일본 등 대다수 국가는 1년 내지 10년마다 자동 갱신 방식으로 면세점 사업권을 재승인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신규 사업권을 딴 업체들은 겉으로 '적극 투자'를 외치지만, 10~20년을 내다본 장기 투자는 쉽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잘 운영되는 모범 기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업권을 뺏는 것은 자유시장 경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5년 한시법'은 매년 반복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일례로 서울 김포공항의 롯데·신라면세점과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의 사업권은 내년 5월과 2017년 12월 잇따라 만료된다. 이렇게 되면 이번과 똑같은 상황이 매년 벌어지는 것이다.
면세점 허가제를 대신해 등록제나 완전 자유제 등으로 면세점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화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투자 여력과 영업력을 갖춘 사업자가 자본금과 인력 같은 기본 요건을 충족한다면 진입 장벽을 아예 없애 경쟁을 통해 시장 전체의 실력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는 "정부가 특허권을 틀어쥐고 특혜 논란을 부추기면서 한국 면세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국민의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5년 시한부 법은 원래 국회의원이 발의해 개정한 법이기 때문에 정부가 등록제로 바꿀 생각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면세점 관련 태스크포스(TF)에서 '5년 시한부' 문제에 대해 최근 검토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후진적 官治 행정 끝내야"
면세점 선정 기준과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관세청은 관리 역량, 경영 능력, 경제·사회 발전 공헌도, 상생 협력 노력 등을 주 요소로 1000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이번 입찰에 참가한 업체 관계자는 "여러 업체가 공통적으로 가장 애쓴 항목은 '상생 협력'이었다"며 "이게 면세 사업 본원 경쟁력과 얼마나 관련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류 검토 위주의 심사 과정과 구체적인 순위와 채점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깜깜이 방식'도 문제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면세 사업 현장에 대해 심사위원이 제대로 실사(實査) 한번 안 하는 이런 조사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사여탈권을 쥔 관세청의 위세만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직 관세청 공무원을 영입하면 다음번 심사에서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심사 발표 전에 특정 기업 내정설(說)이 나도는 식의 후진적인 관치 행정을 하루빨리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