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이동발(發) 은행권 금융 빅뱅(big bang·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이 시작되는 것일까. 계좌이동이란 카드 대금, 이동통신 요금 등 각종 자동이체를 한꺼번에 다른 은행 계좌로 옮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은행 '계좌이동제'가 처음 시행된 30일,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오전 9시부터 계좌이동 업무를 처리하는 인터넷 사이트 '페이인포'(payinfo.or.kr)는 접속자가 몰려 30여분간 다운됐고, '계좌이동제'와 '페이인포'라는 단어가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날 하루 페이인포 사이트 접속 건수는 18만3570건, 소비자들이 실제 계좌 변경을 신청한 건수는 2만3047건에 달했다.
첫날 소비자 반응은 뜨거웠지만, 계좌이동제가 금융 빅뱅의 시발점이 될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4대 개혁의 하나로 금융 개혁을 추진하면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과 함께 계좌이동제를 핵심 수단으로 여겨 왔다.
계좌이동제는 소비자들의 주거래 은행 교체로 약 800조원(지난해 자동이체 금액 799조8000억원)의 자금 이동을 촉발할 수 있고, 펀드, 연금보험 등 각종 금융상품의 판매 경쟁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권 금융 혁신의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아왔다. 실제로 2013년 9월 '계좌이동제'를 실시한 영국에선 연간 120만건의 계좌이동이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주거래 계좌의 80%를 점유하고 있던 4대 은행의 시장지배력이 떨어지고 중소 은행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은행 간 경쟁이 촉진되고 있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들이 고객들을 위한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인터넷뱅킹을 잘 이용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거래 은행 이동이 활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계좌이동제를 이용하려면, '페이인포'에 접속해 공인인증서로 로그인을 한 뒤 자신의 계좌에 등록된 자동이체 가운데 다른 계좌로 옮기고 싶은 항목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당장은 모든 자동이체가 아니라 카드대금, 이동통신요금, 보험료 등 3가지만 페이인포를 통해 일괄 이전이 가능하다. 내년 7월부터는 전기·가스요금, 펀드 투자금, 신문구독료, 학원수강료 등 모든 종류의 자동이체를 한꺼번에 다른 계좌로 옮길 수 있다. 또 내년 2월부터는 페이인포를 이용하지 않고 모든 은행 지점에서 계좌이동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근로소득자의 경우 대부분 급여가 입금되는 통장에 각종 자동이체를 걸어놓는데, 급여는 일괄 이전 대상이 아니다. 급여 입금도 다른 은행으로 옮기려면, 회사에 신청해서 급여가 입금되는 거래 은행을 바꿔야 된다. 그 뒤에 페이인포를 이용해 자동이체를 한꺼번에 새 계좌로 옮기면 된다. A은행 관계자는 "여러 은행과 거래해서 여러 은행 계좌로 급여를 이체해 주는 기업의 직장인들은 별문제가 없겠지만 특정 은행 계좌로만 급여를 이체해 주는 회사의 경우 급여계좌를 다른 은행 계좌로 바꿀 수 없다면 계좌이동제 이용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제약과 번거로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계좌이동제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은행들이 주거래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놓은 서비스나 상품이 비슷하기 때문에 고객 유인 효과가 떨어져 큰 움직임이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