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최근 줄줄이 '곳간'을 열고 배당 확대에 나서고 있다. 세계 꼴찌 수준의 '배당성향'을 보여온 한국 간판 기업들이 일제히 주주 친화(親和)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하고 '分期 배당제' 도입

삼성전자가 11조원대의 자사주 매입·소각과 향후 3년간 순현금수지(free cash flow)의 30~50%를 배당 등의 방식으로 주주들에게 환원하겠다고 29일 발표하자, 이달 28일까지 13거래일 연속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대던 외국인투자자들은 29일과 30일 이틀 연속 1000억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사들였다. 박영주 현대증권 연구원은 "내년에 풀리는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 보통주 기준 배당수익률은 6.6%에 달할 것"이라며 "세계 대형 IT업체 중 이 정도의 배당수익률을 주는 업체는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삼성 주식 매입 붐으로 30일 삼성전자 주가는 3.55% 상승 마감했다.

삼성전자 목표주가도 대폭 상향 조정됐다. IBK투자증권이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150만원에서 175만원으로, 동부증권은 130만원에서 175만원으로 37% 정도 높였다. NH투자증권(155만원→170만원), 신한금융투자(159만원→167만원), 현대증권(150만원→165만원) 등도 목표주가 상향 조정과 더불어 '삼성전자 매수'를 일제히 추천했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한국 대표 기업들의 배당성향이 워낙 낮아 전체 기업 평균을 깎아 먹었지만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가 주주 친화 정책을 분명히 함에 따라 다른 대기업들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포스코는 이달 21일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 '분기(分期)배당제' 도입을 약속했다. 이렇게 되면 1년에 2회이던 배당 횟수가 4회로 늘어, 투자자 입장에서는 배당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고 실질 배당수익률 상승효과가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단기적으로는 배당성향을 15~20%로, 배당수익률(1주당 배당금을 현재 주가로 나눈 값)은 2%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올 들어 사상 첫 '중간배당'을 실시한 현대자동차도 "배당성향을 단기적으로는 15%,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의 평균 배당성향인 25~30%까지 확대하겠다"(이원희 재경본부장)고 밝혔다.

"실적 뒷받침된 주주 親和정책 필요"

한국 기업의 배당성향은 최근 20%를 넘었지만 영국(53.7%)·미국(40.1%)은 물론 일본(33.9%)에도 한참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최근 기업들의 주주 친화 정책 강화가 정부의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의 영향을 일부 받은 만큼 지속 여부를 주목한다.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기업소득의 80% 중 배당과 투자, 임금상승분 등을 제외한 금액에 10%의 세율을 부과하는 세금이다. 자사주(自社株)를 취득해 1개월 내 소각할 경우, 이를 배당으로 인정해준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정부 정책을 의식해 세금을 덜 내려고 배당 확대를 결정하는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주주 친화 정책이 투자 감소 등으로 이어져 중장기 기업가치는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이 자사주 매입·소각에 11조원을 써 오너 일가(一家)와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보다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게 장기적으로 주주 이익에 더 부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이 뒷받침된 가운데 주주 환원책이 나와야 진정한 선순환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