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로야구에서는 투고타저(投高打低) 현상이 두드러진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2002년 패스트볼의 평균속도가 시속 145㎞였는데 작년은 148㎞로 뛰어올랐다. 그만큼 타자의 헛스윙도 늘었다. 2009년 메이저리그 타자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에 스윙을 한 비율이 27.9%였는데 작년에는 30%로 올랐다. 수렁에 빠진 타자들을 구하기 위해 뇌과학이 나섰다. 타격 순간 타자의 뇌 활동을 분석해 유망주를 발굴하고 타격 기량을 높일 단서를 찾고 있다.

보스턴 레드 삭스는 몇 년 전부터 '뉴로스카우팅(NueroScouting)'사가 개발한 비디오 게임을 마이너리그 훈련 코스에 넣었다. 게임은 간단하다. 화면에 다양한 구질과 속도로 공이 다가오면 배트를 휘두를 순간에 대신 키보드를 누르면 된다. 시카고 컵스와 탬파베이 레이스도 같은 회사의 게임을 마이너리그 선수의 훈련에 포함시켰다.

선수들은 게임 성적이 느는 만큼 실제 타격 실력도 늘었다고 했다. 다양한 구질을 반복적으로 치면서 뇌의 판단 속도가 높아진 것이다. 감독들은 게임 성적을 보고 타자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실제로 아마추어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 비디오 게임 결과를 판단 근거로 삼기도 한다. '액슨(Axon)'이란 회사는 아이패드용 타격 훈련 앱(app·응용프로그램)을 발표했다.

타자의 뇌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회사도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뇌과학을 전공한 두 박사가 창업한 '디세르보(deCervo)'사는 '판단(decision)'과 '대뇌(cerebrum)'를 합친 이름이라고 한다. 타자는 전극이 달린 수영모자 형태의 두건을 쓴다. 그러고는 컴퓨터 화면에서 패스트볼이나 커브볼, 슬라이더 중 하나를 선택하고 화면에 날아오는 공을 키보드를 눌러 친다.

프로그램은 타격의 정확도, 반응속도와 함께 두건의 전극이 측정한 귀 뒤쪽 뇌영역의 뇌파를 분석한다. 이곳에서는 시각 정보를 처음 처리하고 운동을 통제한다. 연구진은 뇌파를 근거로 타격의 성공 여부를 86% 정확도로 판단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감독들은 이를 통해 유망주를 걸러내고 슬럼프에 빠진 선수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다. 이미 브라운대 등 미국 대학야구리그 4개팀이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디세르보사는 프로하키 골키퍼용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야구 선수의 시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지난해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아론 세이츠 교수팀은 이 대학 야구 선수를 대상으로 뇌 시각중추의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비디오 게임을 했다.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논문에 따르면 선수들은 게임을 하고 시력이 평균 31% 좋아졌다고 한다. 또 이들은 게임을 하지 않은 선수들보다 삼진 아웃 비율이 4.4% 줄었다.

국내에선 커브볼에 특화된 훈련 프로그램도 나올지 모른다. 지난 6월 권오상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과 함께 커브볼을 치기 어려운 것은 뇌가 부족한 시각정보를 추론으로 메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실제보다 공이 더 꺾어져 보인다는 것. 뇌과학은 과연 경기를 뒤집을 대타(代打)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