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 인상이 시간문제가 되면서 신흥국 경제에도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의 양적 완화와 제로 금리 정책으로 많은 자금이 높은 수익률을 찾아 해외로 나왔는데, 이 자금이 미국으로 돌아가면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몇몇 나라에선 외환 위기 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 달러화 자산으로 갈아타려는 투자자가 늘면서 신흥국 증시와 통화는 모두 약세를 보이고 있다.
◇뚝뚝 떨어지는 신흥국 통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신흥국 통화 환율이 십여 년 만에 최고치(달러화 강세, 신흥국 통화 약세)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일 미 달러화 대비 인도네시아 루피화 환율이나 말레이시아 링깃화 환율은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날 태국 바트화나 필리핀 페소화 환율도 5~6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미국이 경기 부양책 출구 전략을 모색한 지난해부터 미 달러화 대비 신흥국 통화가치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미국이 양적 완화 정책을 완전히 종료한 작년 10월 이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에 속한 국가 21곳의 미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 하락률을 살펴봤더니 지난 11일 기준으로 가장 많이 떨어진 곳은 러시아와 브라질이었다. 두 나라 통화가치는 58%가량 떨어졌다(미 달러화 대비 환율 상승). 두 국가 모두 원자재 강국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원유 가격이나 철광석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출로 벌어들이는 국가 수입이 줄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이 출구 전략까지 펼치니 외화 보유액 감소와 통화가치 급락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나라 원화 가치는 13%가량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작년 10월 1038원 수준이었지만 이제 1184원 수준으로 올랐다. 신흥국 21곳 중 11번째로 많이 떨어진 것으로 신흥국 중에선 딱 중간 정도였다.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유로화(-12%)나 엔화(-11%) 가치 하락률과 비슷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한국이 외환 보유액, 경상수지, 재정 수지 등 건전성 지표에 큰 문제가 없는 데다 원자재 주요 수출국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덜 급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우리보다 통화가치가 덜 떨어진 곳은 태국(-11%)·인도(-8%)·대만(-7%) 등이었다.
◇외국 투자자들 아시아 증시에서 탈출 중
신흥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차손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신흥국 통화로 표시된 자산을 매도하려는 투자자가 늘어나 자본 유출이 일어나게 된다. 통화 약세가 증시 약세로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룸버그에서 집계 가능한 아시아 국가 7곳을 살펴보니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증시에서 모두 자금을 뺀 것으로 집계됐다. 11일 기준으로 순매도액이 가장 높았던 증시는 일본이었다. 지난달 10일 중국 위안화 절하 이후 132억달러(약 15조5000억원)를 뺀 것으로 집계됐다. 증권 관계자들은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경기 부양책을 펼친 이후 일본 증시로 외국인 자금이 많이 흘러들어 왔기 때문에 중국 쇼크로 빠져나간 자금도 많았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2013년과 2014엔 외국인 자금 1527억달러와 69억달러가 일본 증시로 들어왔다. 외국인은 올 들어서도 9398억달러를 순매수했다.
한국은 일본 다음으로 외국인 매도세가 컸다. 외국인은 한국 증시에서 38억달러(약 5조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중국 수출 둔화 우려, 국내 기업들의 이익 추정치 하락 등이 외국인 매도세를 부추긴 요인으로 꼽혔다. 인도와 대만은 한국 증시보다 외국인 매도세가 덜했다. 각각 34억달러(약 4조원), 7억달러(약 8300억원)가량을 매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