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모(40)씨는 요즘 아파트 전세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 11월 초 계약 만기를 앞두고 재계약을 하고 싶은데 그동안 전세금이 워낙 많이 뛴 탓이다. 2013년 10월 이사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우장산 롯데캐슬' 아파트 전용면적 85㎡ 전세 시세는 당시 3억2000만원. 하지만 지금은 4억1000만원으로 9000만원이나 뛰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같은 단지 내 다른 전세 매물을 알아봤지만 "전세는 씨가 말랐고 월세만 몇 개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입자들의 한숨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시작된 전세금 상승세가 6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에도 달라질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無效)'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주택 구입자에 대한 과감한 인센티브 등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저금리·공급 부족에 치솟는 전세금
전세금은 부동산 호황기였던 2002년 연간 10% 넘는 급등세를 보인 이후 2008년까지 6년간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봄 이사철부터 뛰기 시작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당시 집값 상승 기대 심리가 꺾인 데다 '반값 아파트'로 불리던 보금자리주택을 기다리기 위해 전세로 눌러앉는 무주택자들이 급증한 것이 주요인"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2009년 3월 이후 올 8월까지 6년 6개월간 전세금이 떨어진 달이 한 번도 없다. 같은 기간 전세금은 전국이 47%, 서울은 50% 급등했다.
전세난에 더 불을 댕긴 건 저금리와 주택 공급 부족이다. 시중 금리가 연 2%대까지 추락하자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전세 물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서울의 신규 주택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이 2009년 이후 거의 중단된 것도 한 원인이다. 이 시기 신규 아파트 분양이 예년보다 크게 줄면서 입주 물량이 계속 하락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올해부터 늘어난 신규 분양 아파트가 본격 입주하는 2018년까지는 전세 물량 부족 현상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의 전세난이 2~3년 동안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금이 매매가의 턱밑까지 차오른 지역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는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80%를 넘었다. 서울에서는 사상 처음이다.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의 경우 3.3㎡당 전세금이 3000만원에 육박하는 아파트도 적지 않다.
◇하반기 전세 불안 요인 줄줄이… "정부 획기적 대책 필요"
전세금 급등은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 치솟은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대출을 받으면서 가계 소비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현재 전세대출이 있는 가정은 약 80만가구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전세 가구(350만가구)를 감안하면 4가구 중 1가구꼴로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낸 셈이다.
정부는 전세난 해소를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내놨지만 역부족이다. 전세임대주택을 늘리고 대학생과 신혼부부를 위한 저렴한 행복주택도 선보였다. 최근엔 중산층 주거 안정을 위해 최장 8년간 월세로 살 수 있는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을 도입했다. 하지만 행복주택은 최근에야 첫 입주자 모집에 들어갔고, 뉴스테이는 내년이나 돼야 본격 공급이 가능해 전세난 해갈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향후 전세 시장 수급(需給) 상황도 좋지 않다. 당장 올 하반기 서울 강남에서 재건축으로 인한 이주 수요만 6000가구 이상 예정돼 있어 전세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대책도 전세 시장에는 악재다.
전문가들은 전세난을 해소하려면 주택 실수요자에게 취득세 한시 면제, 소득공제 2배 확대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전세 압력을 낮추려면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 구입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면서 "정부 세수(稅收)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면 주택 구입 비용에 대한 소득 공제를 지금보다 2배로 늘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전월세 물량을 늘리려면 민간 임대사업자를 육성해야 한다"면서 "이들에게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