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6일 글로벌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첫 행선지는 중국과 대만이다. 표면상으로는 현장 시찰이지만, 실제로는 새 사업 기회을 찾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게 SK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SK그룹은 26일 최 회장이 선친 최종현 회장의 기일을 맞아 선영에 참배한 뒤, 오후에 전용기로 중국으로 출장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최 회장은 중국 장쑤(江蘇)성에 있는 SK하이닉스 우시(無錫)공장을 방문한다. 28일에는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로 이동해 SK종합화학이 중국 최대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과 합작해 설립한 우한 에틸렌 공장을 찾을 예정이다.
이번 출장에는 유정준 수펙스추구협의회 글로벌성장위원장(SK E&S), 박성욱 SK하이닉스(000660)사장, 차화엽 SK종합화학 사장 등이 일정별로 동행한다.
하지만 이번 출장이 단순한 현장 시찰 성격만 갖고 있지 않다는 게 SK의 설명이다. SK그룹 고위 관계자는 “중국 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룹 차원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 회장은 중국 현지 경제 상황을 살피고, 기업인들을 폭넓게 만나면서 사업 기회를 찾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중국 현지 기업 지분 인수 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중국의 자산 가격 급등이 멈추고 경제 여건이 불확실할 때가 기업 인수나 지분 매입의 적기라는 판단을 그룹 내부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K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계속 시도해왔으나 몇몇 사업을 제외하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지 기업 인수나 사업 협력 등이 필요하다는 게 SK의 판단인 셈이다.
최 회장은 평소 SK가 중국 현지 기업처럼 녹아들어야 한다는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을 강조해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10여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SK는 폭넓은 사업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확보해왔다”며 “이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경영 전략이 바로 인수합병(M&A)”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 회장은 첫 해외 출장지로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을 선택했다. 해당 공장이 SK하이닉스 D램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담당할 만큼 중요한 생산기지이기 때문이다. SK는 최 회장이 “SK하이닉스가 지금과 같은 규모로 성장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온 우시공장 임직원들을 격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8일 방문하는 우한 에틸렌 공장은 최 회장이 7년간 공을 들인 끝에 이뤄낸 대표적인 글로벌 사업이다. 이 공장은 올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7배 수준인 16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합작 이전 시노펙 공장 가운데 가장 효율성이 낮은 곳이었지만 SK의 우수한 기술력과 관리 능력이 접목되면서 중국 내에서 손꼽히는 고효율, 고수익 공장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 회장은 대만에 들러 세계 최대 IT 위탁생산(EMS)업체 홍하이(鴻海·폭스콘) 고위 관계자들과 만난다. SK는 지난해 6월부터 홍하이와 다양한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5월에는 IT서비스 합작사인 ‘FSK홀딩스’를 설립키로 했고, 지난달에는 공장 자동화 설비 및 서비스 개발을 위한 합작사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