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지음|책밭|429쪽|1만8000원
“대기업 집중에 따른 불평등 증가, 중소기업 사멸, 독점가격 폐해 등 오늘날 경제의 여러 문제점을 보고도 그의 주장이 여전히 맞다고 할 수 있나요? 그는 창조적 파괴 행위라는 미사여구를 통해 시장 지배자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한 경제학자가 ‘독점금지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를 당한다. 기소문 낭독이 끝나자 법정이 술렁거린다. 당사자는 ‘아!’ 하고 작은 탄식을 내뱉은 후 이내 반론을 준비한다.
법정에 선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인 조셉 슘페터. 대표 저서인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본질은 기업가의 기술혁신에 대한 역동적인 발전 과정이자 창조적인 파괴의 과정”이라고 설명한 학자로 잘 알려졌다. 저자는 왜 65년 전 이미 고인이 된 경제학자를 법정에 세운 것일까.
새 책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유명 경제학자들을 법정으로 불러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졸지에 피고인이 된 석학들은 자신이 구축한 이론에 반대하는 세력에 맞서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마치 한 편의 법정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인구론을 주장한 ‘토마스 맬서스’, 국제무역이론 발전에 기여한 ‘데이비드 리카도’, 보이지 않는 손의 ‘애덤 스미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윌리엄 베버리지’ 등 경제학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경제학자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법정에서 슘페터를 마주한 학생은 이렇게 따진다. “오늘날 경제는 애덤 스미스가 가정했던 다수의 소규모 회사 간 완전경쟁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독점 이익을 누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당신이 말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엔 장애가 될 것 같은데요?”
슘페터가 대꾸한다. “하나의 산업을 2개의 기업이 지배하는 경우 오히려 10개의 기업이 지배하는 경우보다 더 심한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고전적인 가격 경쟁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비가격 경쟁이 벌어집니다. 과점적 대기업들이 혁신 경쟁으로 경제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자는 치열한 공방전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에 머문다.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는지 언급하면서, 급변한 현대사회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의 한계를 변호한다.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이 참고인으로 등장해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을 옹호하는 장면은 이 책의 숨은 재미다. 반대로 이들이 경제학자를 기소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애덤 스미스의 경우 17세기 영국 철학자이자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공동체적 관점에서 주목한 토머스 홉스가 직접 검사로 나서 그를 기소한다. 그러면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등 비판철학을 수립한 이마누엘 칸트가 변호사로 등장해 스미스를 옹호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시대(18~19세기)를 산 스미스, 칸트와 달리 홉스는 16세기에 태어난 인물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