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각각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결의, 오는 9월 1일이면 통합 법인으로 재탄생한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낸 결과다. 삼성은 지난 5월 두 기업의 합병 선언 후 두 달 동안 여러 부침을 겪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남은 승계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부회장이 실질적 오너 역할을 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이재용 체제의 큰 틀이 잡혔다.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과 오너 일가는 지배구조 개선과 오너십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이재용 부회장이 부친 이건희 회장 만큼의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재계와 시장, 국민 모두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우선 삼성을 괴롭혔던 엘리엇이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른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할 수도 있는 일이다. 현재로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총 결과에서 보듯 해외 투자자들도 삼성의 계열사 재편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 소송전 예고한 엘리엇…쟁점은 5가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했던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은 17일 삼성물산 주총이 끝난 뒤, “수많은 독립주주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이 승인된 것으로 보여져 실망스럽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추가 소송 등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엘리엇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넥서스도 지난달 19일 가처분 심리 공판에서 “주주총회 결의 무효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며 주총에서 삼성이 이길 경우 별도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엘리엇이 합병과 관련해 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은 크게 다섯 가지다.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게 책정돼 있으므로 주총 결의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 ▲삼성이 이건희 회장 의결권을 대리한 것이 위법해 해당 의결권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 ▲삼성물산 임직원들이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는 행위가 대주주 권한을 이용해 절차상 부당하다는 소송 ▲KCC에 자사주를 매각하면서 기존 주주 권리를 침해했다는 소송 ▲삼성SDI, 삼성화재 등 삼성물산 주주인 계열사 이사진이 낮은 가격에 합병을 승인해 배임행위를 저질렀다는 소송 등이다.
이건희 회장 의결권의 경우, 민법 제118조 ‘대리권의 범위’에서 권한을 정하지 않은 대리인은 ‘보존행위’와 ‘대리의 목적인 물건이나 권리의 성질을 변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이용 또는 개량하는 행위’만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쟁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하는 방안을 의결했기 때문에, 삼성물산 주식의 성질이 변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엇이 삼성SDI(006400)와 삼성화재(삼성화재해상) 주식을 1% 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도 소송을 염두 해둔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법상 지분 1%를 갖고 있는 주주는 이사(위법행위 유지청구소송)와 회사(주주대표 소송)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며 “삼성SDI와 삼성화재 경영진이 헐값에 삼성물산을 제일모직과 합병시키는 데 동의해, 두 회사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의 소송을 걸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ISD로 확전?…”엘리엇, 근거 갖췄다”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궁극적으로 투자자·국가소송(ISD) 제도를 활용해 한국 정부를 제소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또 “ISD 제소를 할 경우 엘리엇은 삼성에 대한 압력을 높일 수 있다”며 “엘리엇이 ISD 제소를 갈 이유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ISD 제소를 위해서는 투자 행위 이후 해당 국가 정부가 법제도를 편파적으로 운용해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적 기관인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고 그 근거도 명확히 밝히지 않아 엘리엇이 제소할 수 잇는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엘리엇은 이와 별도로 삼성에 자사가 보유한 삼성 계열사 지분의 매입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 때 상당한 웃돈을 붙일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동시 다발적인 소송을 통해 삼성을 괴롭게 만든 뒤,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비싼 가격에 지분을 되살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