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비트(fitbit)는 손목밴드나 고무 팔찌처럼 생긴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를 만드는 업체다. 이 기기와 스마트폰을 연동하면 심박수, 운동량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건강관리를 할 수 있다.
2007년 창업한 이 기업은 지난달 18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上場)하며 일약 시가총액 97억2000만달러(약 11조1410억원·17일 기준)로 부상했다. 핏비트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박(39)도 단번에 '1조원의 사나이'(9.3% 지분 보유)로 변신했다.
제임스 박 CEO는 전화와 이메일을 통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각지에서 누구나 쓸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고 싶다"며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인수·합병이나 마케팅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플워치로 웨어러블 기기 시장을 휩쓸고 있는 애플, 삼성전자와의 경쟁에 대해 "우리는 고객에게 (애플, 삼성과는 다른)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세 차례의 창업에서 실패와 매각을 거친 끝에 성공 신화를 쓴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이다. 그는 "항상 내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꿈을 위해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하버드대학 졸업장'도 포기했다.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해 소프트웨어를 공부하다 1998년 학교를 중퇴했다. 제임스 박은 "창업을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자 학교 졸업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며 "취업이 아니라 창업을 선택한 이상 굳이 학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하버드대학을 중퇴했던 1990년대 후반은 미국에서 닷컴 열풍이 한창 불던 시기였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역시 1998년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중퇴하고 창업했다. 제임스 박은 "1998년은 닷컴 열풍이 정점을 찍었던 시기"였다며 "졸업장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그가 처음 세운 회사는 에페시 테크놀로지스라는 전자상거래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였다. 그러나 2년 만에 판매가 저조해 회사를 접었다. 곧이어 '헤이픽스(HeyPix)'라는 온라인 사진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인드업 랩스를 설립해 운영하다, 2005년 4월 미국의 IT 전문매체인 시넷에 매각했다. 회사 매각 후 그도 시넷에 합류했으나 2년 만에 다시 회사를 뛰쳐나왔다. 2006년 말 새벽 6시부터 줄을 서 기다리며 산 닌텐도의 게임기 '위'(Wii) 때문이었다. 그는 "위를 처음 해보면서 소프트웨어와 동작 감지 센서를 결합한 제품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여기서 얻은 영감(靈感)으로 만든 제품이 바로 핏비트다.
제임스 박은 "나의 아이디어와 능력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방법은 창업이었다"며 "내 능력을 굳이 다른 사람(기업)을 위해 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 번의 창업을 했지만 그가 창업의 필수 요건으로 꼽은 건 뜻밖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창업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에 도전한 뒤에 아이디어를 생각해야 합니다. 창업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열정(passion)에서 나오는 겁니다. 아이디어는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고 의지를 가지고 시작하면 눈에 보입니다."
그가 10여년간 시도한 사업은 기업용 소프트웨어부터 서비스, 하드웨어에까지 이른다. 그에게 실패를 안겨준 것은 전공을 했던 소프트웨어였던 반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곳은 비(非) 전공이었던 하드웨어(핏비트)였다. 제임스 박은 "모르는 분야에 도전할 때마다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해본 적 없다"며 "새로운 분야에 대해 처음부터 배워 나가는 것이 내게 에너지와 즐거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비전문가의 새롭고 신선한 관점은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다른 경쟁자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