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콜마비앤에이치와의 합병을 발표한 지 약 두 달만에 거래를 재개한 미래에셋제2호스팩의 주가가 심상찮았다. 2000원에 상장됐던 주식이 거래 재개 직후 이틀 연속 상한가를 치더니 보름도 채 안 돼 1만3000원까지 치솟았다. 일일 주식 거래량이 전체 공모주 수(650만주)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날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제2의 선데이토즈’라고 말했다. 선데이토즈가 2013년 하나그린스팩을 통해 우회상장한 뒤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듯 콜마비앤에이치도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콜마비앤에이치에 대한 투자 열기는 이미 선데이토즈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지난 8일, 서울 수하동 미래에셋센터원빌딩에서 이동희 기업금융본부 부장을 만났다. 이 부장은 콜마비앤에이치를 발굴해내 우회상장시킨 장본인이다.
◆ 스팩 공모가 9배 웃돌아⋯“다단계라 상장 못한다” 편견도
콜마비앤에이치는 지난 17일 종가 기준으로 1만7750원을 기록했다. 7일엔 장중 한 때 1만9000원을 넘기도 했다. 스팩 공모가(2000원)의 9.7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콜마비앤에이치는 건강 기능식품을 주로 판매하는데, 면역력 증강 제품도 팔고 있어 최근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때문에 주가가 더 올랐다. 일부 건강 기능 식품은 재고가 동이 날 정도로 잘 팔렸다고 한다.
당초 증권 업계 대다수 관계자들은 콜마비앤에이치의 주가가 이 정도로 많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건강 기능식품과 화장품을 판매한다는 점은 주가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나, 2만원에 근접할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콜마비앤에이치는 제품 판매·유통이 80% 이상 ‘다단계’를 통해 이뤄지고 있어요. 이 회사가 원래는 직상장을 하기 위해 다른 증권사들에 접촉을 했는데, 다단계 무너지면 매출도 같이 무너지지 않겠냐며 다들 거절했다더군요.”
이 부장은 ‘다단계’는 기업 가치를 매기는 데 있어 큰 흠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2012년 한국콜마가 인적분할,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당시 주간사를 맡아 자회사들을 꼼꼼히 공부했던 경험 덕에 콜마비앤에이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부장이 보기엔 콜마비앤에이치의 중심은 ‘기술력’에 있었다. 다단계 회사(애터미)는 그저 유통망일 뿐이었다. 유통망이 무너질 것 같지도 않았을 뿐더러, 설령 무너진다 하더라도 유통 채널만 바꾸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미래에셋증권은 스팩 2호를 통해 콜마비앤에이치를 상장시키기로 했다. 한국콜마홀딩스와 콜마비앤에이치에 우회상장을 제안한 뒤 일주일만에 합병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임시 주주총회에서 스팩 발기주주들이 만장일치로 합병에 찬성했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 부띠끄 운영하며 내공 쌓아⋯1기 스팩 실패 아픔도
이 부장은 1996년 동원증권(옛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해 증권인이 됐다. 한때 회사를 나와 부띠끄(유사 자문사)를 7~8년 간 운영하며 회사 대주주들 돈도 관리해주기도 했다. 2009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부띠끄가 문을 닫자, 이 부장은 과거 동원증권에 다닐 때의 선배를 통해 미래에셋증권에 입사했다.
그는 미래에셋증권에 둥지를 튼 뒤 1기 스팩을 합병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봤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당시엔 제도적인 제약이 많아 회사의 현재 가치만 갖고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산정해야 했다. 굴뚝주가 아닌 성장 산업은 스팩과의 합병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스팩을 청산시켰다. 1기 스팩들 가운데 최초의 청산 사례가 됐기에 더 씁쓸했다.
1기 스팩의 실패를 뒤로 하고 미래에셋증권은 2기 스팩과 콜마비앤에이치를 합병시켰다. 지난해 7월 미래에셋제2호스팩이 상장될 당시 스팩의 발기인(주식회사 설립과 관련, 정관에 서명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스팩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증권사는 스팩 주식을 공모가의 50%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 덕에 미래에셋증권은 보통주 2만4000주와 전환사채(CB) 150만주를 주당 1000원에 살 수 있었다. 약 15억원의 투자 원금이 들어갔다.
미래에셋증권은 다음달부터 콜마비앤에이치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 부장은 “지분 매도는 상황을 봐 가며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래에셋증권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약 250억원에 달한다.
“콜마비앤에이치가 상장한 뒤 주가가 굉장히 많이 올랐기 때문에 남은 스팩들의 성과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커요. 두 달 전 쯤 130억원 규모의 3호 스팩이 상장됐고, 4호 스팩은 50억~60억원 규모로 다음달에 공모할 예정이에요. 이 스팩들도 잘 합병시켜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 “스팩 합병, IPO보다 어렵다”
이 부장은 요즘 모바일 관련 업체들을 관심 갖고 살펴보고 있다.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플랫폼이 PC에서 모바일로 바뀌었을 뿐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아요. 그 때는 인터넷을 베이스로 한 ‘닷컴’ 기업들이 성장했듯 지금은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업체들이 크고 있죠. 마찬가지로 모바일 보안, 결제, 콘텐츠 등 연관 산업이 뜰 것 같아요. 아직까지 접촉중인 회사는 없지만,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은 커요.”
그는 스팩이 성과 없이 청산될 경우 원금만 받을 수 있는 반면 불리한 조건에라도 합병을 하면 최소한 2배 수익은 낼 수 있으나, 그런 ‘손해’를 봐 가며 합병하지는 않겠다는 원칙을 지킨다고 얘기한다.
“불리한 조건으로 합병을 하면 스팩 공모 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요. 저는 스팩 주주들의 권리를 대변해야 하니, 이들이 손해 보지 않는 방향으로 합병을 주도해야죠. 따라서 지금 당장은 기업 가치가 좀 낮아도 성장성이 큰 회사를 찾아 합병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에요. 스팩 합병 대상을 찾는 건 IPO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에요.”
👉스팩(SPAC)
기업인수목적회사. 기업 인수·합병을 위해 증권사에서 만들어놓는 서류상의 회사다. 보통 상장한 뒤 3년 안에 합병을 완료해야 하며, 합병하지 못할 경우 청산된다. 기업공개(IPO)에 비해 약 1년 6개월 가량 빨리 상장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