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028260)의 합병이 17일 두 회사 주주총회에서 승인 받으면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 등 오너 3세를 중심으로 한 승계구도의 뼈대가 완성됐다. 하지만 이제 근육과 살을 입히고, 피부를 덧씌우는 일들이 남아있다. 어느 정도 숨고르기가 끝나면 삼성 계열사의 재편이 다시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배구조에서 삼성의 과제는 ▲삼성전자(005930)등 핵심 계열사를 안정적으로 지배하고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사장의 계열사 지분을 늘리고 ▲선대(先代)의 사업확장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순환출자, 상호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안정된 지배구조를 확보하는 게 가장 큰 숙제다.
핵심은 삼성생명(032830)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1%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7.12%), 삼성물산(4.06%), 삼성화재(삼성화재해상·1.26%) 등 계열사 지분과 자신이 보유한 3.38%의 지분을 기반으로 삼성전자의 ‘오너’ 역할을 유지했다. 오너 일가와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17.22%.
문제는 이 같은 소유구조가 금융자본(삼성생명)이 산업자본(삼성전자)을 소유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이른바 ‘금산분리’ 관련 법규에 저촉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삼성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금융 계열사를 세우는 지배구조를 갖출 것으로 재계 안팎에선 보고 있다. 다만 이는 금융 부문 지주사(중간금융지주회사)를 둘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뤄져한다.
일단 오너 일가 및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안은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추진 발표 이후 금융투자업계는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통합 삼성물산으로 옮길 것이라는 분석을 잇달아 내놨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외에도 호텔신라(008770)(8%), 삼성중공업(010140)(3.4%), 에스원(012750)(5.7%) 지분을 갖고 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 되는 방안은 삼성생명을 인적분할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투자회사로 따로 떼어낸 뒤, 통합 삼성물산과 인수합병 형식으로 넘기는 것이다. 투자회사는 일반적으로 주가가 사업회사보다 저렴하다. 이 때문에 주식교환과 공개주식매수 등을 통해 투자회사 지분을 높일 수 있다.
그렇게 지분율을 높인 뒤 제일모직과 합병하면 자연스럽게 제일모직이 삼성전자 대주주가 될 수 있다. 2001~2003년 LG그룹은 LG화학(051910)과 LG전자(066570)를 이 같은 방식으로 쪼갠 뒤, 지주회사인 ㈜LG(LG(003550))를 출범시켰다.
삼성SDI(006400)의 계열사 지분도 정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삼성SDI는 통합 삼성물산 지분 4.7%를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엔지니어링(13.1%), 삼성정밀화학(14.7%)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삼성SDI가 보유한 지분 때문에 그룹 내에서 순환출자 및 상호출자 구조가 존치되는 셈이다. 삼성SDI의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정리하면 부담없이 순환출자 논란을 종결시킬 수 있다. 이 밖에도 삼성전기(009150)(2.61%), 삼성화재(삼성화재해상·1.37%)의 통합 삼성물산 지분도 정리할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계열사가 이들 지분을 매입할 지, 아니면 제3자에게 블록딜(대량 매매) 방식으로 넘길지 등 매각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엘리엇과 같은 또다른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대하진 않을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삼성물산의 오너 측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점이 약점이었지만 이번 합병으로 그런 우려는 해소됐다”며 “합병 과정에서 삼성 측의 대응 능력을 보여준 이상 다른 행동주의 펀드들이 개입하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