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는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非)과세 감면을 정비해 사실상 대기업들이 세금을 더 내게 하는 방향으로 세법(稅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은 정부가 제출한 11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시작된 날이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추경안 중 5조6000억원은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고 집중 공격했다. 야당은 정부가 지난 3일 추경안을 의결해 국회에 제출한 이후 줄곧 '5조6000억원의 세입 추경안은 통과시킬 수 없지만, 법인세 인상을 수용하면 통과를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최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야당의 법인세 인상 공세를 피하면서도, 추경안 통과에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카드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 부총리 "대기업 세금 더 내게 하겠다"
정부는 추경까지 편성해야 하는 지금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 법인세 인상은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정책 운영"이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기재부 측은 이날 최 부총리의 대기업 과세 강화 발언에 대해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야당이 주장하는 법인세 인상은 하지 않겠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면서도 "기업에 주던 한시적인 세금 감면 혜택을 일부 연장하지 않는 방향으로 세법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방침을 반영해 다음 달 초 세법 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까지 적용되는 비과세 감면 조항은 모두 88개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없앨 수 있는 혜택이다. 이 중 연구시험용 시설이나 직업훈련용 시설 등에 투자한 금액의 3~10%를 세금에서 빼주는 '연구 및 인력개발을 위한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등이 정부의 심층평가 대상에 올라 있다. 또 대기업에 혜택이 쏠리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연구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도 추가로 축소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가 가계와 기업 간 소득분배 불균형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수용해 2013년 세법 개정 때 대기업이 한 투자에 대해선 세액공제를 중견·중소기업보다 적게 해 주는 방식으로 바꿨다. 우리나라의 법인세 실효세율(기업이 실제 부담하는 세금)은 지난 2007년 20.5%, 2008년 19.6%였는데, 이명박 정부 시절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하면서 2010년 이후 16%대로 떨어졌다. 올해 대기업이 비과세나 세금 감면으로 입는 혜택은 2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정부는 추정한다.
◇과감한 재정정책 잘했지만, 구조개혁은 미흡
최 부총리가 장기 저성장이 우려되는 국면에서 '대기업 과세 강화'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16일로 취임 1년을 맞는 최 부총리는 수많은 정책을 쏟아냈지만, 아직 뚜렷하게 체감될 만큼의 경제 회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본지가 경제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최 부총리의 지난 1년 동안의 정책 중 공무원연금 개혁과 확장적 재정정책은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단기적인 개선책이긴 했지만 공무원들의 반발을 뚫고 어쨌든 성과를 냈다"(김성태 KDI 연구위원), "확장적 재정정책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데 적절한 처방"(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이었다는 것이다. LTV와 DTI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것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부동산 경기의 숨통을 틔웠다"(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는 의견과 "가계 부채만 늘린, 하지 말았어야 할 정책"(전성인 홍익대 교수)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노동개혁 등 4대 개혁은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의미가 있을 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치인 출신 최 부총리는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따라서 올해 연말까지를 그의 임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길지 않아 보이는 남은 기간에도 실세 부총리에 대한 주문은 쏟아졌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경기가 좋지 않지만 금융 위기 이후 5~6년 동안 망한 기업이 없다"며 기업 구조조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단기 부양책이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며 "구조개혁과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노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거대 담론을 끄집어내는 것보다는 경기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어쨌든 정권이 중반 이후로 돌입했다"며 "무리한 형태의 구조개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불안한 중국 경제 상황과 일본 엔저로 인한 우리 수출 부진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 경제 전문가〉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류덕현 중앙대 교수,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성태윤 연세대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영 한양대 교수,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 전성인 홍익대 교수, 홍기용 인천대 교수(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