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현 조선경제i 취재본부장

지난달 25일 한국 시장에 등장한 애플워치를 구입했다. 결혼식 때 찼던 손목시계를 1999년쯤 안방 서랍에 넣은 뒤 시계를 잊고 지냈다. 시계 기능을 장착한 휴대폰만 있으면 시각을 아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워치는 출근 전에 꼭 챙겨야 할 휴대 품목으로 손목시계를 2순위에 올렸다. 물론 1순위는 여전히 스마트폰이다.

올해 초 2015년 최고 IT 제품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6가 될 것으로 보였다. 삼성전자가 3월 갤럭시S6를 발표하자 모두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최고 전략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다. 이에 비해 지난해 9월에 애플이 첫선을 보였던 애플워치(스마트워치)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이 보여줬던 혁신성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평이었다.

하지만 두 제품의 흥행 성적은 예상과 크게 다르다. 애플워치는 예약판매를 시작한 이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세계 시계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반면 갤럭시S6는 반짝 인기를 끈 이후 잠잠하다.

이 같은 흥행 실적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애플워치를 손목에 채울 때 대학 입학 선물로 받았던 일제 시계를 처음 찼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당시 시계를 차고 하숙집을 나서면 괜스레 마음이 뿌듯했고, 사람들 앞에서 한 번이라도 시계를 더 보려고 했다. 애플워치 역시 기기를 통해 자기를 남에게 드러내고 싶은 열망을 자극했다. 애플이 그만치 시계라는 전통 카테고리를 디지털 언어로 재정의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이에 비해 갤럭시S6는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애플의 아이폰6를 능가하는 세계 최고지만 숱한 스마트폰 중의 하나일 뿐이다. 특히 성숙기에 접어든 스마트폰 시장에서 '최고'라는 개념만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는 어렵다. 차세대 제품인 갤럭시S7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애플워치와 갤럭시S6의 흥행 차이는 이처럼 성장이 둔화된 기존 시장과 완전히 다른 시장 중 어느 것을 겨냥했느냐에서 비롯됐다.

삼성의 리더들은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사태 연루, 헤지펀드의 삼성물산 경영권 공격 등 긴급 현안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아마도 긴급 현안과 좀 떨어진 사안을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갤럭시S6의 부진은 삼성전자의 미래를 위협하는 강력한 경고 신호로서 더 심각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의 핵심 요소인 모바일 운영체제(OS)에 대한 지배력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삼성 갤럭시 시리즈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PC 시대에 컴팩·HP·델 등 1등을 다퉜던 업체는 모두 무대 중심에서 사라지고, OS를 지닌 마이크로소프트만 건재함을 떠올리면 갤럭시 시리즈의 미래는 뻔하다. 또 앞으로 모바일 OS를 지배하는 애플과 구글이 스마트워치, 핀테크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때마다 삼성전자는 고통스럽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

삼성은 무슨 수를 사용해서라도 모바일 OS 지배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마트폰 부문을 별도 회사로 떼 본체라도 보호해야 한다. 인텔 창업자 앤디 그로브는 "숱한 '소음' 중에서 전략적 변곡점을 알려주는 '신호'를 알아차려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했다. 삼성 리더들이 갤럭시 S6의 흥행 부진을 '소음'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