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브볼의 궤적을 연속 촬영한 모습. 야구공이 시야 중심에서 벗어나면, 타자는 실제보다 야구공이 더 휜다고 느낀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윤성환 투수는 커브볼(curveball)이 주무기다. 타자들은 공이 몸 앞에서 급격하게 휘어지는 것을 보고 방망이를 뺐는데 스트라이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혀를 내두른다. 한·미(韓美) 연구진은 이처럼 타자들을 현혹하는 '커브볼 착시(錯視)'는 뇌가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작동하기 때문임을 밝혀냈다.

커브볼 착시란 야구공을 시야의 중심에 두면 실제 궤적대로 인지하지만, 야구공이 시야의 주변부로 가면 야구공이 회전하는 방향으로 실제보다 더 휜다고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권오상 울산과기대(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는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과 함께 커브볼 착시와 내비게이션의 정보 처리 과정을 비교했다. 실험 참가자들이 겪은 커브볼 착시의 정도는 위성 신호가 끊겼을 때 내비게이션이 자동차 위치를 추정하는 알고리즘으로 계산한 것과 일치했다. 권 교수는 "위성 신호가 끊기면 컴퓨터 알고리즘이 자동차의 직전 위치와 속도 등으로 현재 위치를 추정한다"며 "뇌도 공이 시야 주변부로 빠져서 위치 정보가 부족하면 실밥의 회전 방향과 같은 움직임 신호에 의존해 위치를 추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야구공은 회전하는 방향으로 실제보다 더 꺾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시각은 커브볼과 같은 극단적인 운동까지는 몰라도 자연에서 생존에 필요한 물체의 운동은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권 교수는 "공학자들이 고안한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뇌가 이미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 연구 결과"라며 "커브볼 착시는 오히려 뇌가 똑똑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