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이 다음달 17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위임장 대결(proxy fight)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위임장 대결은 두 진영이 주총에서 자기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좀 더 많은 주주로부터 의결권 행사 권한을 넘겨받기 위해 벌이는 경쟁을 말한다.
엘리엇은 27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삼성물산(028260)주주들을 대상으로 의결권 위임 신청을 받는다고 24일 발표했다. 위임장은 권유인을 통한 직접 신청, 우편 및 팩스를 이용한 서류 제출, 전자우편과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한 신청 등을 받는다고 엘리엇은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은 지난 18일 개설한 인터넷 웹사이트(www.fairdealforsct.com)를 통해 받겠다고 했다. 엘리엇은 이를 위해 지난 16일 주주명부 열람 신청을 했으며, 24일 오후 삼성물산에서 주주명부를 열람하고 사본을 작성해 반출했다.
또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외에 현물 배당을 할 수 있게 정관을 바꾸고, 주총 결의 만으로도 중간배당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도 25일 자사 주주들을 대상으로 의결권 위임신청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시간은 30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다. 삼성물산은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의결권 위임 권유 신청서에서 제일모직과 합병이 “중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장기적인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적법한 절차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진행되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은 또 엘리엇이 주장한 대로 합병이 금융지주회사법, 공정거래법, 상호출자·순환출자 규정 위반 등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 주주총회는 17일 오전 9시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다. 합병 등 특별결의 안건은 주총 출석 주주 3 분의 2 이상과 발행 주식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최근 3년 동안 삼성물산 정기 주주총회 주주 참석률은 60% 안팎이다. 경영권 분쟁이 벌어져 양 측이 ‘위임장 경쟁’을 벌이면서 주주 참석률이 10%P 이상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주주 참석률을 70%로 가정하면, 엘리엇이 전체 주식의 23.3%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는 셈이다. 엘리엇 보유 지분(7.12%)을 차감하면 16.18% 정도다. 거꾸로 삼성은 엘리엇이 이 정도 지분을 모으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주주명부가 폐쇄된 11일 현재 외국인 지분율은 33.61%다. 엘리엇을 제외하면 기관투자자들의 지분이 다수다. 가장 많은 것은 뱅가드(2.15%), 블랙록(2.04%), 디멘셔널(1.41%) 등 시가총액에 비례해 기계적으로 매매하는 인덱스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다. 이를 제외하면 외국인들은 1%에 미치지 못하는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현대차 사례처럼 외국계 투자자들이 연계해 반대 목소리를 낼 경우 만만치 않은 세력을 구축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10~11%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계와 금융투자업계는 지분 10.15%를 보유한 주요 주주 국민연금이 어느 편을 들어줄 지가 관건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4일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서 어떻게 의결권을 행사할지 자문하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SK C&C와 SK의 합병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연금은 SK의 지분 7.19%를 보유하고 있다. 의결위는 합병 취지와 목적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합병 비율, 자사주 소각 시점 등을 고려할 때 SK의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반대 의사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