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 고객들은 타 은행 자동화기기(ATM)를 통해 송금할 때 대개 건당 400~1200원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은행 고객들은 어떨까? 타행 송금 수수료로 대개 2440~ 4900원가량을 지불한다.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면 수수료는 폭등한다. 미국 은행은 건당 18~45달러(4만7000원)쯤이고, 영국은 25파운드(4만2000원)나 내야 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5%로 내리면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일부 시중은행들이 수수료 인상 검토에 들어갔다. 금융위원회도 15일 금융규제개혁 회의를 열고 "앞으로 정부가 수수료나 가격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은행서비스=공짜'라는 금융문화가 우리나라 은행산업을 멍들게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금융 당국 직원이 앞으로 은행 수수료 문제에 부당하게 개입하면 인사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는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며 외부 연구기관에 수수료 관련 연구 용역을 맡길 계획이다. 그동안 낮은 가격에 책정돼 왔던 은행 수수료가 본격적으로 수술대 위에 오를 조짐이다.

16일 은행연합회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송금·인출·중도상환·외환송금 수수료 등 대표적인 10가지 은행 수수료 항목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일본·영국보다 높은 것은 어음수표 교부 수수료(건당 1만원~1만2000원)로, 일본(9120원)보다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이자 부문 이익(수수료가 77% 차지)은 9.1%로, 사상 처음으로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2011년 11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6조2000억원으로 대폭 떨어졌다.

◇미국에서 주택담보대출 받으려면 300만원 수수료 지불

국내 은행에는 보통 대고객 수수료·외환수수료·대출관련 수수료 등 100가지 항목의 수수료가 있다. 이 가운데 해외 수수료와 가장 크게 차이나는 것은 주택담보대출 관련 수수료다. 한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별도의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금의 1.5%로, 3년 이후부터는 면제받는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미국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최소 300만원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대출신청을 위한 대출신청수수료(65~640달러), 근저당권 설정비 등이 포함된 대출준비수수료(1984~2865달러), 주택감정수수료(263~444달러), 대출금을 못 갚았을 때 대비해 받는 주택소유자보험료(300~ 1000달러) 등이다. 영국은 최대 350만원, 일본도 최대 60만원의 수수료를 낸다. 중도상환수수료도 미국은 2%(2년 내 지불 시), 영국은 1~6%에 달한다. A은행 여신 담당자는 "우리나라도 과거 1990년대에는 감정수수료·근저당권설정비를 고객이 부담했지만, 수년 전부터 모두 없어졌다"고 했다. 24시간 실시간 이체가 가능한 국내와 달리,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은행 마감 이후 송금 신청을 해도 그다음 날 송금이 처리된다. 서비스가 더 좋지 않은데도 우리나라보다 수수료를 몇 배 더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짜인 인터넷뱅킹 송금수수료도 미국·영국에선 건당 2만~3만원씩 낸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은행계좌를 개설하는 데만 100~200달러를 수수료로 낸다. 상품마다 다르지만 통상 매달 500달러~5만달러의 잔액을 계좌에 유지하지 않으면 10~30달러씩 지불하는 계좌유지수수료를 지불한다. 잔액이 없고 거래도 없는 '깡통 통장'은 은행의 손해라 고객이 비용을 부담토록 하기 때문이다.

◇"외환송금수수료 등 기업관련 수수료부터 현실화하자"

미국 연방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미국 6500여개 은행은 고객 수수료 수입 증대로 전체 당기순이익이 2010년 835억달러에서 지난해 1528억달러로 급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0) 금리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은행들의 마진율은 3.1%로 우리나라(1.6%)의 두 배가량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치권 압력에 따른 정부의 가격 개입과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은행들의 과도한 출혈 경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원가를 무시한 수수료 정책이 시행되어왔다. 예를 들어 은행의 증명서발급수수료 원가는 8000원에 이르지만, 우리나라 은행은 1000원만 받는다. 은행 자동화기기 이용 수수료도 건당 300원가량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무료로 제공된다. 금융계에서는 '제로 수수료'는 은행 소비자들의 부담을 더는 정책이지만, 급격히 경기가 위축하면서 은행들이 경영난에 봉착하면 그 부메랑이 국민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상욱 우리금융연구소 실장은 "망가진 은행을 살리기 위한 공적자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수료가 선진국 은행 수준으로 현실화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인 공감대부터 형성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민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가계금융 관련 수수료보다는, 대기업들이 은행에 지불하는 기업금융 관련 수수료부터 현실화하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은행 수수료 수입의 14%를 차지하는 외환송금수수료는 5000원~2만5000원으로, 기업 고객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미국 JP모건체이스와 웰스파고 은행은 40~45달러, 일본 미스비씨UFJ는 7만원이 넘는다. 정부 관계자는 "은행들이 수수료를 현실화한다면 동시에 좀 더 차별화한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