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수익보다 公益을 추구하는 착한 벤처들
문제 학생 교화, 온라인 법률 서비스, 점자 스마트폰 개발 등
서울 성수동 일대 최근 착한 벤처 클러스터 조성

김모(16)군은 밤새 게임을 하고 다음날 오후 4~5시에 기상하는 삶을 반복하다 2013년 고등학교에서 정학을 당했다.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져 수백만원을 탕진하고 배팅 자금을 구하려고 온라인 사기를 쳤다가 고소까지 당했다. 소주를 매일 2병씩 마시고 나무라는 부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담뱃불로 자해까지 했다.

김 군은 친구 권유로 2014년 여름 서울 강남의 자기 계발 플랫폼 업체인 지원인스티튜트(www.ZwonI.com)를 찾았다. 2013년 2월 문을 연 이 회사는 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벤처 회사다. 이 곳에선 게임과 대화를 통해 김군이 원하는 미래와 성공한 남성이 되겠다는 욕구를 끄집어내줬다. 삶에 규칙이 생겼고 수학의 재능을 발견했다. 인터넷 강의로 독학한 끝에 김 군은 최근 수능 모의고사에서 수학 1등급을 받는 수준이 됐다. 김군은 “금융인이 되기 위해 경제 등을 스스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착한 벤처’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 기업은 단기 수익성보다 공익(公益)과 지속가능한 경영을 추구한다. 최근 이들 착한 벤처들이 모인 성수동 공장지역이 새로운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희망과 성공’을 파는 벤처

“대안학교도 포기한 학생들을 다듬어 경제가 다시 살아날 때 적소에 공급한다는 게 목표다.”

허지원(35) 지원인스티튜트 대표는 “성공을 파는 벤처”라고 자평했다. 스스로가 사업의 모델이었다. 허대표는 한영외고에서 2학년 때까지 내신 최하등급을 받았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의 DNA를 알아야겠다’며 유명 인사들을 찾아다녔다. 삼성전자 사장, 연예인 홍석천씨, 게임벤처 창업자 등 60여명 인사들을 무작정 방문했다. 문전박대를 숱하게 당한 끝에 허 대표가 요약한 ‘성공의 흔적’은 4가지였다. ‘열정’∙’능력’∙’인맥’∙’인성’이었다. 그리고 1년 동안 공부에 매달려 서울대(철학과)에 합격했다.

자신의 경험을 사회에 전달하겠다며 고교 후배들과 창업했다. 직원들의 경력은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삼성토털 근무, 연세대 재학생 등 화려했다. 하지만 직원들도 군대에서 영창을 갔다오는 등 방황의 경험을 한두가지씩 가지고 있었다.

🔺허지원 지원인스티튜트 대표(사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지난 12일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학교 적응에 실패한 학생들과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성형주 기자.

이들은 잘게 쪼갠 실천 단계들을 만들어 학생들이 목표에 다가설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성공에 대한 동기를 심는데 6개월 정도 소요됐다. 이후 능력 배양 단계에선 경제∙컴퓨어∙외국어를 가르쳤다. 영어는 스티브 잡스∙마윈 등의 연설문으로 , 컴퓨터는 간단한 회로 제작 키트를 활용한 실습으로, 경제는 시중 경제서적 탐독으로 실력을 키웠다. 학생들이 기준금리∙인플레이션 등의 개념을 활용해 가계부채 위험도를 그리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 회사의 목표는 학생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모바일 등을 통해 성공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허 대표는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만나보면 거꾸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며 “본질을 바꿔 가치를 높인 뒤 수익을 내는 과정은 인내가 필요하지만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착한 벤처'

지원인스티튜트 처럼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착한 벤처들은 곳곳에서 크고 있다.

로앤컴퍼니(lawcompany.co.kr)는 24시간 법률 상담 플랫폼을 제공하는 벤처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연세대 로스쿨을 나온 김본환 대표가 “대중들이 편하게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로 2012년 창업했다. 집단소송을 돕는 ‘로스퀘어’, 변호사와 채팅 법률상담을 할 수 있는 ‘로톡’ 등을 운영 중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사용하는 기존 집단 소송 방식과 달리 로스퀘어는 모든 과정의 진행 상황을 개인별로 확인할 수 있다.

김주윤(26)씨 등 20대 청년 4명이 2014년 3월 창업한 스타트업 ‘닷(dot)’은 세계 최초로 점자 스마트워치를 개발했다. 기존 ‘점자 리더기’의 가격은 300만~500만원이라 95%의 시각장애인들은 문맹으로 살아야 했다. 기존 리더기를 구매해도 철 소재에 길이 40㎝·폭 20㎝라 휴대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닷이 개발한 점자 스마트워치는 가로·세로 3㎝에 무게도 손목시계와 비슷하다. 신소재 발굴, 유통 개혁 등으로 가격도 10분의 1도 안될 만큼 낮췄다. 닷의 스마트워치에는 화면 대신 초소형 점자판(모듈)이 장착돼 있다. 연동된 스마트폰 또는 태블릿PC 등을 통해 이메일과 뉴스, 검색 정보 등을 받아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로 전달한다. 기존 단말기와 비교했을 때 혁명 수준이다. 작은 점자판을 은행 창구나 ATM(은행자동화 기기)에 부착할 수도 있다. 현재 시중은행과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 중이다.

패션 브랜드 ‘마리몬드(Marymond)’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압화(꽃과 잎을 눌러서 말린 그림) 작품을 상품에 적용했다. 휴대폰 케이스∙가방∙텀블러∙공책 등을 만든다. 올 초엔 인기 아이돌 수지가 이 회사 휴대폰 케이스를 들고 공항 패션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윤홍조(29) 대표가 2012년 창업했다.

지난 11일 김달선 김외한 할머니가 영면하시면서 14일 현재 생존해 계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50명으로 줄었다. 윤 대표는 수익금의 상당 부분을 위안부 할머니들과 관련된 NGO에 기부하고 있다. 그는 “기업 규모를 키우기보다 ‘존귀함의 회복’이라는 경영 철학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 성수동 공장지대로 모이는 착한 벤처들

강남 테헤란로가 일반 벤처 밸리라면 성수동 공장지대는 소셜(social) 벤처 밸리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 중심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장남인 정경선(29) 루트임팩트 대표가 있다. 그는 2014년 11월 자신의 사회적 기업 ‘루트임팩트’ 본사를 성수동에 차렸다. 비영리단체∙소상공인∙주민들과 ‘사회적 도시’를 개발하자는 취지로 ‘서울숲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정경선 루트임팩트 대표가 서울 성수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시계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 조선일보 DB.

정 대표는 사회적 기업인의 공동체 주택 겸 커뮤니티 공간인 ‘디웰’도 열었다. 이 곳엔 공신닷컴의 강성태 대표와 글로벌 대학생 비영리단체인 인액터스, 부모학교 자람패밀리, 청년 비영리단체 아프리카인사이트, 저소득층 교육·멘토링 비영리법인 점프 등이 속속 입주했다.

소셜 벤처 투자업체인 소풍(Sopoong)이 지난 1월 문을 연 벤처지원공간 ‘카우앤독(CoW&DoG)’도 이 지역에 있다. 이름부터 ‘함께 일하고, 좋은 일을 하자(Co-Working & Do Good)’는 뜻이다. ‘개나 소나(cow&dog) 자유롭게 와서 일하되, 창업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는 뜻도 있다.

소풍은 12개의 소셜벤처에 투자한 후 인큐베이팅(보육)을 진행하고 있다. 차량 공유로 환경오염을 줄이는 쏘카, 크라우드 펀딩 업체 텀블벅 등이 이곳에서 크고 있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 김정주 NXC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 국내 벤처 1세대들이 만든 벤처자선 기관 ‘C프로그램’도 입주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