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포스코 창사 후 47년 역사에서 항명(抗命)이라는 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포스코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최근 대우인터내셔널 전병일 사장 해임 논란을 둘러싼 그룹 내홍(內訌)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12일 이같이 말했다.
포스코 계열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의 전병일 사장은 지난달 26일 그룹이 검토해온 대우인터내셔널 미얀마 가스전 매각안(案)에 대해 반대 의견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자신에 대한 해임 절차가 진행되던 이달 10일에는 '당장 물러나지 않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사외이사들에게 보냈다.
그의 두 차례 '항명'에 대해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11일 오후 '전 사장에 대한 해임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는 해명 자료를 내도록 지시했다. 대신 '항명이라고 언론에 보도되도록 한 책임을 묻겠다'며 한성희 홍보실장(상무)을 보직 해임시켰다. 미얀마 가스전 매각안 유출 책임을 빌미로 10일 경질된 조청명 포스코 가치경영실장(부사장)과 홍보실장이 이번 사태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내부에서는 "이런 식이라면 누가 회사 방침을 관철시키기 위해 앞장서 일하겠느냐"는 자조(自嘲)가 나오고 있다.
◇"가스田 매각하면 회사 불구된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는 대우인터내셔널이다. 지난달 중순 포스코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을 총괄하는 가치경영실은 미얀마 가스전 매각안이 포함된 'DWI 자원사업 구조개선 검토' 문건을 들고 인천 송도에 있는 대우인터내셔널 본사에서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이 문건이 사진으로 찍혀 지난달 22일 무렵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익명(匿名) 앱인 '블라인드'에 올라왔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이걸 올린 건 대우 직원들"이라며 "조직원으로서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권오준 회장이 대우인터내셔널을 통째로 팔려고 했으나 포스코가 인수했던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만 제시되자 '우량 자산만 떼어 파는 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한 임원은 "미얀마 가스전은 1%도 남기기 어려운 무역사업 이익을 모아 10여년간 투자해 이뤄낸 대우 조직원들의 피와 땀의 산물"이라며 "이걸 팔면 회사는 불구(不具)가 되는데 이런 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그냥 넘어갈 수 있느냐"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병일 사장은 사내 게시판에 "미얀마 가스전 매각은 대의명분이 부족하고 재무적 실리도 없으며 절차상 실현 가능성도 없다"며 "매각 시 이익의 40~50%가 과세 대상이어서 결과적으로 포스코에 2000억원의 장부상 손실이 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대우 직원들은 이에 대해 쌍수를 들고 환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전 사장은 12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이사회를 열어 공식 거취를 표명하겠다"고 말해 사실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포스코 구조조정 방향키 잃고 混線"
재계에서는 권오준 회장 등 포스코 수뇌부의 구조조정 작업에 대해 '전반적으로 아마추어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스코특수강의 헐값 매각 논란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특수강은 주력 사업에 포함되는 알짜 계열사인데도 충분한 자금력이 없는 세아제강에 무리하게 파는 바람에 시세의 3분의 1밖에 못 받았다"고 지적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한 간부도 "우리는 섬유·철강·자원 같은 주력 포트폴리오를 시대에 따라 바꿔가며 생존해 왔는데 미얀마 가스전만 떼내 파느니 차라리 회사를 통째로 매각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의 한 임원은 "지난달 26일 미얀마 가스전 매각 관련 조회 공시 답변서에서 포스코는 '검토 중이나 확정된 바 없다'며 검토 사실을 인정했는데 대우인터내셔널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며 "오합지졸 집단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재계에서는 "포스코가 구조조정의 방향키를 잃고 혼선을 빚고 있어 걱정된다"는 시각이 많다. 한 경제단체 고위 임원은 "오너가 없는 포스코에서 수뇌부가 흔들리면 국민경제 전체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며 "해외 사업 구조조정 등 포스코가 해야 할 일이 산적했는데 하루빨리 조직을 추슬러야 한다"고 말했다.
[권오준 회장은]
입사후 R&D 외길… 취임후 '경영능력' 우려 목소리
권오준 회장은 작년 1월 회장 선출 당시 사내외에서 "전혀 의외의 인물이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임 정준양 회장의 서울사대부고 후배인 권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으로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포스코 입사 후 기술연구소장·기술총괄 사장 등 연구·개발(R&D) '외길'을 걸어와 일선 현장 경영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내 교류가 적어 포스코 임원진 사이에선 "권오준이 도대체 누구냐"는 얘기가 한동안 나돌았다. 구조조정 같은 난제를 해결할 '경영 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고 R&D 출신만 중용(重用)한다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