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7일 올해 임금(賃金) 인상분의 20%를 협력사와 나누기로 결정한 것은 지금까지 나왔던 대·중소기업 상생(相生) 협력 방안 가운데서도 가장 획기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성과와 무관하게 원청 업체의 기본급 인상분 자체를 협력 업체와 나누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원청 업체의 기본급이 인상되는 만큼 협력 업체도 그에 상응하는 낙수(落水) 효과를 볼 수 있어 임금 격차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과 중소 협력 업체 간의 불공정한 관계는 오랜 문제 제기에도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았다. 원청 업체는 원가 절감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협력 업체를 쥐어짜고, 그 성과는 독식(獨食)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실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2009년 중소 제조 업체 직원의 월평균 임금은 제조 대기업의 58% 수준이었지만 격차가 커지면서 작년엔 52%로 내려앉았다.

SK하이닉스의 임금 공유제는 무엇보다 노조(勞組)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SK하이닉스 노사(勞使)는 올해 기본급의 3.1%를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임금 인상분의 10%를 협력사를 위해 내놓고, 회사가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또 내놓기로 하면서 실제 임금인상률은 2.8%로 줄어든다. '철밥통 노조' '노동 귀족'이라고 비판을 받아온 대기업 노조가 자신들의 몫을 자발적으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SK하이닉스 직원과 회사가 이렇게 마련한 약 60억원은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의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하는 협력사 직원 4000여명에게 제공된다. 이들은 본사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지만 대기업이 직접 하지 않는 장비 세정(洗淨), 라인 내 물류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 돈은 협력사 직원들의 임금 인상과 복리 후생 등 처우 개선에 쓰인다. 반도체 라인은 상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만큼 안전, 보건 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쓰인다. 60억원을 4000명에게 단순히 나눈다고 봤을 때 1인당 약 150만원의 지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이달 중 협력사 대표들과 구체적인 지원 절차에 대해 협의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노동조합 김준수·박태석 위원장은 "이번 타결로 노사가 협력 업체 직원과 모든 이해관계자까지 한 식구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사 관계 조성을 위해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작년 매출 17조1260억원에 영업이익 5조1090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 특성상 업계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고 최근 안전사고까지 발생한 가운데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임금·단체협약을 조기에 타결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은 "반도체 업계의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고 이기려면 협력사와의 단단한 상생이 중요한 경쟁력 요인"이라며 "노조도 적극 협력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상생 협력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