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혁신기업들의 본산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업가들과 투자자 모두로부터 '대부(Godfather)'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실리콘밸리란 명칭이 생기기도 전인 1962년 이곳에 벤처캐피털업을 처음 시작해 50년간 250여개의 벤처기업에 투자한 벤저민 피치 존슨(Johnson·82) AMV(애셋매니지먼트벤처스) 설립자 겸 전 회장이다. 세계 최대 바이오제약 기업인 암젠(Amgen)이 그의 대표적 '작품'이다. 1983년 나스닥 증시에 상장하기 직전 자본금이 1900만달러(210억원)에 불과했던 암젠의 현재 시장가치는 1188억달러(132조원)에 달한다.
지난달 26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사무실에서 만난 존슨 전 회장은 "세계적인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려면 운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창업가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이 지난 50년간의 경험으로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우리 중소기업청과 함께 한국의 바이오·헬스 기업에 투자하는 1100억원 규모의 공동 펀드 조성 사업에 참여하고, 유럽을 오가며 벤처 육성에 대해 자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존슨 전 회장은 특히 과학기술에 대한 '평생 교육'을 강조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존슨 전 회장은 벤처투자업에 뛰어들기 전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생 청강 제도'를 이용해 생소했던 컴퓨터과학과 분자생물학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때 배운 지식이 훗날 첨단 바이오·IT 기업에 투자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면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을 재능있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창업 인프라'도 강조했다. 이는 문화적 인프라와 제도적 인프라로 나뉜다. 존슨 전 회장은 "도전을 북돋아 주고 실패를 용인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문화적 인프라요, 강력한 벤처캐피털과 효율적인 회계 제도, 저렴하고 우수한 법률 서비스 등이 제도적 인프라"라며 "실리콘밸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한국이 독일처럼 실패를 '치욕'으로 여기는 문화라면 당장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80대의 나이에도 뛰어난 기억력과 달변이었다. 그는 "한국전쟁 때 미 공군에 근무하면서 한국에 대해 많이 들었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에 가보고 발전한 모습에 놀랐다"면서 "국가 간에 '벤처투자'란 개념이 있다면 한국은 내가 아는 한 최고의 투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