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Q 소속 김소현(왼쪽)과 김유정(오른쪽)은 1999년생 동갑내기로 국내 여성 연기자 가운데 최고의 유망주들로 꼽힌다.

현재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업체들은 가수 중심의 기획사다. 빅뱅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와 동방신기, 엑소, 소녀시대 등을 거느린 SM엔터테인먼트, 씨앤블루가 있는 FNC엔터테인먼트 등은 해외 공연과 음원 판매, 광고를 통해 매년 높은 수익을 거두며 코스닥시장 내에서 수천억원의 시가총액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가수 중심 기획사들이 본격적으로 날개를 펴기 전인 2000년대 초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곳은 연기자들이 중심이 된 연예기획사인 싸이더스HQ였다.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톱 여배우로 떠오른 전지현을 비롯해 정우성, 차태현, 조인성, 송혜교, 설경구, 김혜수, 박신양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거느렸던 싸이더스HQ는 한 때 국내 드라마와 영화, 광고시장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싸이더스HQ가 전성기를 누렸던 2000년대 초·중반과 비교하면 최근의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다. SM이나 YG, FNC 등은 소속 가수들이 ‘한류’를 등에 업고 일본과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리며 거대기업의 대열에 들어섰다. 후발 주자인 키이스트 등은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수현 등 차세대 톱스타들을 발판 삼아 새로운 강자로 올라섰다.

과거에 비해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최근 싸이더스HQ는 다시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회사의 간판을 IHQ로 바꾼 이후 ‘제2의 전지현’이 될 만한 차세대 기대주들을 육성하는 한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구도를 재편하고 있다.

◆ ‘싸이더스 신화’ 일군 매니저 정훈탁

IHQ의 설립자인 정훈탁씨는 20여년간 여러 주연급 연기자들을 발굴하며 ‘스타 제조기’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날렸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조용필의 로드 매니저로 들어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이후 가수와 공연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관심을 돌렸다.

정씨가 이른 나이에 성공한 연예기획사 대표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스타가 될 유망주를 알아보는 감각과 안목이 탁월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한 영화배우 정우성은 압구정동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정훈탁씨의 눈에 들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여배우들이 넘쳐나던 당시 중성적인 매력이 강했던 김지호를 발굴해 히트상품으로 키웠고, 대학 동기였던 무명배우 박신양에게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해 스타로 이끌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정훈탁씨에게 발굴돼 데뷔한 전지현(오른쪽)은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흥행에 성공하며 톱스타 대열에 올라섰다. 사진은 2002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지현. 왼쪽은 ‘공공의 적’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설경구.

특히 정훈탁씨의 성공에 가장 든든한 발판이 돼 준 것은 전지현의 발굴이었다. 진선여고에 재학 중이던 90년대 후반 정씨의 눈에 들어 데뷔한 전지현은 드라마 ‘해피투게더’ 등에 출연한 뒤 광고 모델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삼성전자 프린터 광고에서 강렬한 테크노 음악에 맞춰 소화한 댄스는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후 2001년 출연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전지현은 광고계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태풍의 눈’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거대화 된 기업집단이 된 싸이더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 무렵부터다. 1999년 정훈탁씨가 설립한 EBM프로덕션과 차승재씨가 이끄는 영화제작사 우노필름, 인터넷 영화유통업체 웹시네마, 벤처기업 로커스 등이 합병해 2000년 싸이더스가 출범했다.

매니지먼트와 영화 제작, 배급 등을 겸하는 수직 계열화를 꿈꾸며 출범했지만, 싸이더스의 성공 스토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계속된 합병 과정에서 이해 관계가 엇갈린 끝에 결국 각 계열사들이 2년여만에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싸이더스HQ도 당초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한 채 본업인 연기자 매니지먼트 이외에는 크게 사업영역을 확대하지 못 했다.

◆ 연기자·가수·콘텐츠 ‘3박자’ 갖춘 종합기획사로 진화

최고의 톱스타들을 수십명씩 거느렸던 지난날과 비교해 보면 현재의 IHQ는 위상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회사의 상징과 같았던 전지현을 비롯해 많은 주연급 연기자들이 회사를 떠났고, 정훈탁씨 역시 대표직에서 내려와 사내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금융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IHQ가 이대로 지난 영광을 추억으로만 간직한 채 잊혀져가는 과거의 강자로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아직은 나이 어린 ‘미완의 대기’ 상태지만, 몇 년 뒤 톱스타 대열에 합류할 만한 잠재력을 갖춘 유망주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신속한 사업 재편으로 기존 중점 사업영역이던 연기자 중심의 매니지먼트과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내 다시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① 김유정, 김소현…‘차세대 전지현’ 기대 모으는 쌍두마차

현재 IHQ 소속 연기자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얼굴은 아역 연기자인 김소현과 김유정이다. 1999년 동갑내기인 이들은 모두 초등학교 취학을 전후한 어린 나이에 데뷔한 뒤 지금껏 꾸준히 연기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과거 아역 출신 연기자들이 성인이 돼 가면서 어린 시절의 이미지에서 탈피하는데 실패해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김소현과 김유정의 경우 다양한 장르의 작품 출연과 소속사의 세밀한 이미지 관리를 통해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소녀에서 여성으로 커 가는 매력을 더해가며 인기가 더욱 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소현의 경우 그 동안 장혁, 최강희, 하지원, 김래원, 공유, 이종석 등을 배출하며 ‘스타 등용문’이 돼 왔던 드라마 ‘학교’ 시리즈의 ‘후아유-학교 2015’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성인 연기자로 도약하기 위한 막바지 채비에 들어섰다. 김유정 역시 SBS 인기가요의 공동 MC로 활동하면서 올해 드라마 ‘앵그리맘’에도 주연급으로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모델 출신 연기자 김우빈은 친구2와 기술자들, 스물 등 다수의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아가고 있다.

이미 스타 대열에 들어선 대표 연기자로는 김우빈이 있다. 최근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웰메이드예당 소속 이종석과 함께 지난 2013년 방영된 ‘학교 2013’에 출연했던 김우빈은 최근 영화에서 활동을 늘려가고 있다. ‘친구2’와 ‘기술자들’, ‘스물’ 등 출연작들이 잇따라 저조한 흥행 실적을 기록했지만, 모델 출신으로서 고정 팬 층이 두터운 데다 다수의 영화 출연을 통해 연기력도 늘고 있어 김수현, 이종석 등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많다.

IHQ는 이 밖에도 장혁과 임슬옹, 이유비 등 젊은 주연급 연기자와 이미숙, 김응수, 김병옥 등 연기력을 갖춘 명품 조연 연기자에 박미선, 이봉원 등 개그맨 등까지 두루 소속돼 있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② 포미닛·비스트 갖춘 ‘JYP 2중대’ 큐브엔터테인먼트 품어

2000년대 중반 이후 IHQ가 눈에 띄게 성장하지 못했던 것은 매니지먼트 사업의 중심이 가수가 아닌 연기자에 치우쳐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연기자들이 보통 영화나 드라마 출연 등을 통해 얻은 인기를 발판으로 광고에서 수익을 얻는 구조인데 비해 가수들은 공연과 음반 수입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도 수익을 올린다.

특히 연기자와 가수의 차이가 확연히 엇갈린 것은 해외시장에서의 실적이다. 아이돌그룹을 포함한 가수들은 한류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일본, 중국, 동남아 등에서 라이브 공연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린다. 지난해 소속 연기자 김수현이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중국에서 이름을 알리면서 실적 개선에 성공한 키이스트 정도를 제외하면 연기자 중심 매니지먼트사들의 성장 속도는 SM이나 YG, FNC 등 가수 중심 기획사들에 미치지 못한다.

IHQ가 2013년 인수한 큐브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그룹 비스트

IHQ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13년 165억원을 투자해 큐브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큐브엔터테인먼트는 남성 아이돌그룹인 비스트와 여성 아이돌그룹 포미닛을 주력으로 하는 가수 중심 매니지먼트사로 지난 4월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 비스트의 멤버인 윤두준과 이기광, 포미닛의 현아 등 두 그룹 모두 주력 멤버들이 과거 JYP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출신들이라 업계에서는 ‘JYP 2중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큐브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실적이 다소 부진했지만, 올해는 해외시장에서의 수익이 크게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포미닛의 새 앨범 ‘미쳐’가 중국 텐센트 음원차트에서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신인 걸그룹인 CLC도 톱10에 진입하는 등 최근 중국에서의 인지도가 크게 늘고 있다. 토러스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큐브엔터 소속 가수들은 중국에서 최소 10회에서 최대 16회의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또 큐브엔터 계열의 음반과 매니지먼트 계열사인 에이큐브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에이핑크와 허각도 올해 신규 앨범을 내는 등 꾸준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③ CU미디어 합병으로 콘텐츠 플랫폼도 확보

IHQ는 지난 3월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인 CU미디어와 합병했다. CU미디어는 드라맥스와 코미디TV, Y스타, AXN 등 드라마와 오락 채널 6개를 운영하는 MPP(Multi Program Provider) 사업자다. 이 합병을 통해 서울과 경기지역 등에서 가장 큰 사업 규모를 가진 케이블방송업체 씨앤엠이 IHQ의 최대주주가 됐고, 정훈탁씨는 6%의 지분을 가진 3대 주주로 계속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CU미디어와의 합병으로 IHQ가 장기적인 성장과 수익 창출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그 동안 IHQ는 여러 주연급 연기자들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니지먼트 사업의 실적 변동성이 크고, 드라마 제작 사업 역시 대부분의 수익을 편성권을 가진 방송사들이 가져가 별다른 실익이 없었다.

그러나 CU미디어와 합병해 꾸준한 광고 수익과 수신료 매출을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사를 확보해 제작 비용을 낮추고, 소속 연기자들의 활용도도 높이는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민정 KB투자증권 연구원은 “CU미디어와의 합병 전까지 매니지먼트와 콘텐츠 제작, 채널사업의 수직계열화를 갖춘 곳은 CJ E&M이 유일했다”며 “현재 CU미디어 채널의 광고수익 시장점유율은 2.2%인데, IHQ와의 합병으로 채널 영향력이 확대돼 점유율이 계속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현재 실적은 부진…안정적 수익 유지할 ‘캐시카우’ 확보도 숙제

차세대 톱 스타가 될 만한 자질을 갖춘 유망주들을 여럿 확보하면서 최근 사업영역도 공격적으로 넓히고 있지만, IHQ의 현재 실적은 여전히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2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이듬해에는 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잇따른 M&A 과정에서의 비용 증가로 영업손실 규모가 41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당기순손실도 81억원에 달했다.

IHQ는 지난해 큐브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올들어 CU미디어와도 합치는 등 빠르게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인수계획을 발표한 뒤 기념촬영하는 정훈탁씨(오른쪽에서 두번째)와 홍승성 큐브엔터테인먼트 회장(왼쪽에서 두번째)

회사에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해 줄 ‘간판선수’가 없는 점도 고민거리다. SM의 경우 동방신기가, YG는 빅뱅이 확실한 흥행 주력선수로 나서면서 매년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회사는 신인을 육성하고, 마케팅에 나서면서 다음 주력선수를 키운다. 지난 2005년 설립된 FNC가 10년도 안 돼 시가총액 2700억원이 넘는 대형 기획사로 성장한 것도 씨엔블루와 FT아일랜드라는 확실한 ‘캐시카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HQ의 경우 아직 실적 개선의 발판이 돼 줄 만한 이렇다 할 주력선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 연기자들의 경우 확보할 수 있는 수익에 한계가 있는 데다, 과거 전지현이나 키이스트의 김수현 등과 같이 막대한 광고 수입을 거두는 게 가능한 대형 스타가 없는 상황이다. 비스트와 포미닛 등 큐브엔터 소속 가수들도 다른 소속사의 아이돌그룹에 비해 흥행 파괴력은 다소 떨어진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IHQ 역시 해외시장에서 연기자와 가수들의 인지도를 꾸준히 높이는 것이 실적 개선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코스닥 상장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중국에서 시청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웹드라마 등을 합작하면서 소속 연기자들을 출연시켜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 중국 내 마케팅도 더 적극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