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 시장에 많은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모든 회사가 웃은 건 아니다.
ICT(정보통신기술) 서비스와 영화·콘텐츠 등 특정 업종에 대한 투자금은 크게 증가한 반면 반도체 및 전자 부품 등을 생산하는 ICT 제조업에 대한 투자금은 반 토막이 났다.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경쟁 심화와 전방산업의 업황 악화로 ICT 제조 업체들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ICT 서비스업은 핀테크와 O2O(offline to online) 업체의 성업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ICT 제조업, 벤처 투자금 44% 줄어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1~3월 국내 벤처캐피털의 투자 금액은 358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9% 넘게 증가한 수치다. 전체 투자금은 늘었으나 업종에 따른 편차는 크다. 이 기간 ICT 서비스 업종에 대한 투자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430.3% 증가한 822억원을 기록했다. 유통·서비스 업종 투자금 역시 185%가량 늘었고 영화 등 영상·공연 업체에 대한 투자 금액은 22% 증가했다.
반면 ICT 제조업에 대한 투자금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43.6% 감소한 233억원에 그쳤다. ICT 제조업에는 반도체 등 전자 부품과 통신 장비 등이 포함된다. 게임 업종(-26.8%), 화학·소재업종(-19.3%) 역시 벤처캐피털의 투자 금액이 크게 줄었다.
◇"중국 업체에 경쟁력 떨어져… 전방 산업 부진도 원인"
벤처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한때 벤처 업계의 '강자'로 군림했던 ICT 제조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로 중국 회사들과의 경쟁 심화를 꼽았다.
김형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통신 장비와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국내 ICT 제조업체들이 중국 업체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오자,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투자 매력을 별로 못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5년 동안 중국의 전자 부품 수출액은 큰 폭으로 증가한 반면, 우리나라 업체들의 수출 금액은 더딘 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전자부품 수출액은 2173억3489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5년 전(2010년)에 비해 48% 넘게 증가한 금액이다. 이 기간 우리나라의 IT 제품 전체 수출 금액은 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방산업의 업황 악화가 협력사인 벤처 업체들의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대표이사는 "우리나라 ICT 제조 업체들은 독자 브랜드를 갖고 생산하기보다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경우가 많아, 대기업의 실적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며 "최종 생산물을 만드는 업체들의 성장세가 꺾이자 국내 ICT 제조업체들의 경쟁력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며 투자가 줄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 투자 수익률도 낮아
ICT 제조 업체들에 대한 투자 매력이 줄자 투자금 회수 수익률 역시 다른 업종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회수 수익률은 벤처캐피털 등 투자사가 회수한 손익금을 회수 원금으로 나눈 값으로, 투자를 통해 얼마나 큰 수익을 올렸는지 가늠할 수 있는 수치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ICT 제조사에 대한 국내 벤처캐피털의 평균 회수 수익률은 24.4%를 기록했다. 이는 게임(281.9%)과 ICT 서비스(123.6%) 업종의 투자금 회수 수익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김형수 전무는 "지난해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의 실적이 워낙 안 좋다 보니 부품을 주로 만드는 벤처 기업들의 실적도 같이 악화됐다"면서 "이 때문에 벤처 기업이 지분을 매도하거나 기업 공개를 할 때 기업 가치를 낮게 평가받았고, 지분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의 수익률도 낮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