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국인 청년 마윈(馬雲)은 1995년 미국 시애틀에 있는 허름한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중국 항저우(杭州) 정부의 업무를 처리하러 파견됐던 마윈은 친구 사무실에 우연히 들렀다가 "뭐든지 찾아주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번 아무 단어나 써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키보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천천히 쳤다. 'beer'(맥주). 종합 전자상거래 회사인 '알리바바' 창업자이자 중국 3위 부자인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이 인터넷과 처음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기조연설을 위해 한국을 찾은 마 회장은 19일 인터뷰에서, 처음 인터넷을 접하고 이를 계기로 1999년 중국의 첫 전자상거래 회사인 '알리바바'를 세웠던 때를 돌아보며 "15년 전과 비교하면 우리는 확실히 꿈에 한걸음 다가갔다. 그러나 15년 후와 비교하면 우리는 아직 아주 작은 아기"라고 했다. 마 회장이 '아시아에도 인터넷을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동업자 17명에게 8800만원을 모아 세운 알리바바는 16년에 걸쳐 쇼핑·B2B(기업간거래)·결제·금융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종합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했다. 계열사 10개로 이뤄진 알리바바그룹은 지난해 9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 기록을 세우며 상장했다.

중국 3위 부자인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은 자신의 젊은 시절이‘낙방’으로 요약된다며“수없이 떨어지다 보니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그는“지금은 세계에 불만이 팽배한 흥미로운 시대”라며“성공한 기업가는 지금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불만을 풀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21세기 가장 주목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인 마 회장은 양말 위에 가는 발목이 드러나는 소박한 정장 차림으로 인터뷰실 의자에 앉았다. 거물답지 않게 친근한 모습이라고 하자 "나는 내가 거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제때, 제대로 된 일을 한 운 좋은 사람일 뿐"이라며 웃었다.

마 회장의 젊은 시절은 '낙방'이란 단어로 요약된다. 그는 중학교 시험에 세 번, 대학에 세 번 낙방했다. 대학 입학시험 준비를 하는 도중에 취업에도 도전했는데 30번 넘게 떨어졌다. 미국을 배우고 싶어 하버드대에 10번 원서를 보냈고, 역시 모두 거절당했다.

―왜 그렇게 많이 떨어졌나.

"내가 떨어진 것은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대로 된 학위도 없고 집안 배경도 그저 그랬고 생긴 것도 변변치 않았다. 미국 KFC가 중국에 진출한다기에 입사 원서를 넣었다. 24명이 지원했는데 23명이 들어갔다. 나만 떨어졌다. 경찰은 5명을 뽑았는데 4명이 붙었다. 또 나만 떨어졌다. 수없이 떨어지다 보니 내가 거절당하는 일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더라."

―낙방의 경험이 경영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나.

"당연하다. 나는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누군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아주 고맙고 영예스러운 일이고, 거절당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라고.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도전도 하지 않느니 계속 도전해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 않겠는가."

―공부 못하고, 취업 안 되는 젊은이들에게 당신이 큰 롤모델이 될 것 같다.

"나는 학생들을 만나면 '반에서 3등 안에 들려고 애쓰지 마라'고 말한다. 계속 1등만 하는 사람은 패배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 그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해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나는 사람을 채용할 때도 학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학위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누군가 박사학위를 가졌다면, 그건 그 사람이 공부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는 뜻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학위를 따고 10~20년 후에 세상에 없던 훌륭한 무언가를 만들어낸 후에야 그 사람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이 증명된다.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그래도 공부 잘하고, 그래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를 원한다. 현대를 세운 정주영이나 삼성의 이병철 같은 '거물 창업자'가 나올 기미가 잘 안 보인다는 우려도 있다.

"나는 한국이 기업가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과 현대는 20세기에 큰 성공을 거둔 회사들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폐허에서 이륙할 때 기업을 만들었고 성장의 거대한 물결을 잘 탔다. 그러나 그 기업들도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기업가 정신을 꽃피울 기회를 준다면 충분히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영화·드라마·게임·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보라. 얼마나 혁신적인가. 젊은이들에게 '너 삼성 같은 회사 언제 만들래'라고 몰아붙이는 건 불공평하다. 정주영·이병철 같은 기업인은 한 세기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하다. 시대도 바뀌었다. 20세기가 '번쩍이는 달'의 시대였다면 미래는 수많은 '반짝이는 별'들이 만들어가리라고 믿는다."

―젊은이들이 당신 말에 동의할까. 많은 청년들은 한국이 역동적이었던 20세기에 비해 성장이 정체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에 불만이 많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 청년도 불만, 유럽도 불만, 대만·홍콩·미국 청년들이 모두 불만에 가득 차 있다. 세상에 불만이 많다는 것은 이를 해결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미래의 기업가는 지금 불평하는 사람이 아닌, 이 불만들을 풀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올 것이다. 내가 처음 중국에 전자상거래 회사를 세우겠다고 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다. 중국은 얼굴을 맞대고 거래하는 '관시(關係)'로 돌아가는 나라인데 인터넷 거래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했다. 이런 '믿음의 부재(不在)'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내놓은 해결책이 3자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였다. 이처럼 알리바바의 역사는 언제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언제나 인간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고, 세상에는 문제보다 해결책이 훨씬 많다고 믿는다. 불평이 많은 시대야말로 기업가 정신이 빛을 발할 기회다."

마 회장은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을 많이 연구한다. 성공한 기업인은 저마다 다른 모습이어서 이를 따라 하기 어렵지만, 실패한 기업엔 공통점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패한 기업이 어떤 교훈을 주나.

"경영이란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성공이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문제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총알을 안 맞아야 한다. 인간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과거에 했던 실수를 공부하면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이기심, 지나친 갈구, 욕심, 준비되지 않은 팀… 이런 실수들 말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는데, 취업하려다 30번 떨어졌을 때보다 행복한가.

"사실 난 요즘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나와 회사 모두 이 정도 부(富)를 누릴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 IPO 후에 나는 계속 자문한다. '우리는 좋은 회사지만, 정말 사상 최대에 걸맞을 정도로 굉장한 회사일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때때로 거리를 마음껏 걸어 다니고 노래방이나 술집에 가서 놀고 싶다는 상상을 하면서 '보통 사람만큼도 행복하지 못하네'라고 투덜대기도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아직 내가 지금의 자리에 앉을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인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