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 사옥. 50인치대 LCD(액정표시장치) 모니터에 손가락 2개 크기의 막대를 꽂자 화면에 MS 윈도 운영체제를 실행한 화면이 나타났다. 무선 키보드를 연결하자 인터넷 검색을 하고 동영상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커다란 컴퓨터 본체(本體)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비밀은 모니터의 USB 단자에 꽂았던 스틱(stick·막대)에 있다. 길이 11㎝, 무게 46g인 이 조그마한 스틱이 컴퓨터 본체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름도 '스틱PC'다. 크기는 일반 PC 본체의 수백분의 1 수준이지만 필수 기능은 다 갖췄다. CPU(중앙처리장치)로는 태블릿PC에 주로 쓰이는 인텔의 베이트레일(BayTrail)이 탑재됐다. 저장장치는 최대 32기가바이트(GB)에 메모리 2GB를 넣었다. 고성능 게임을 즐기기는 어렵지만 인터넷 검색과 문서작성 등 일상 업무는 거뜬히 처리할 수 있다.

이 제품은 휴대성이 최대 장점이다. 조그만 스틱PC를 갖고 다니다 모니터에 꽂기만 하면 내 PC 환경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거실 TV에 꽂으면 TV를 컴퓨터처럼 쓰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MS 장홍국 상무는 "스마트TV보다 훨씬 자유롭게 다양한 작업과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도 저렴하다. 대우루컴즈가 한국MS와 협력해 만든 스틱PC는 5월 말 10만원대에 출시될 예정이다.

인텔의 초소형 PC ‘컴퓨트 스틱(Compute Stick)’. 윈도 운영체제가 내장돼 있다. 길이 10㎝, 무게 42g인 컴퓨트 스틱을 모니터나 TV에 꽂으면 일반 PC처럼 활용할 수 있다.

책상에서 손바닥 거쳐 주머니로 들어간 PC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밀려 쇠퇴하던 PC가 과감한 변신(變身)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책상이나 바닥 공간을 떡하니 차지하던 큼지막한 데스크톱(desktop)이 손바닥만 한 '미니PC'로 진화하더니 이제는 손가락만 한 '스틱PC'까지 출현했다. 성능은 좋지만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던 PC가 스마트폰처럼 조그만 사이즈로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2012~2013년 주춤하던 PC 시장이 작년 2분기를 기점으로 반등한 것도 PC의 소형화 추세가 시장의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레노버 강용남 대표는 "과거에는 컴퓨터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부품의 종류가 많고 크기도 컸다"며 "기술이 발전하면서 부품의 소형화, 다기능화가 촉진돼 미니PC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틱PC가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작년 10월 중국 온라인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미고패드(Meego Pad)'란 제품이 판매되면서부터다. 대우루컴즈의 스틱PC와 크기와 사양이 비슷한 이 제품은 현재 온라인에서 100~130달러 정도에 팔리고 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 인텔이 올 초 미국에서 열린 전자(電子) 전시회 'CES 2015'에서 초소형 PC를 선보이면서 관심은 더욱 고조됐다. 인텔이 내놓은 것은 길이 10㎝, 무게 42g인 '컴퓨트 스틱(compute stick)'이었다. 반도체 업계의 '1인자' 인텔은 이 조그만 기기에 윈도 운영체제, 무선랜, 블루투스 등 다양한 기능을 집어넣었다.

컴퓨트 스틱은 구글의 크롬캐스트나 아마존의 '파이어TV 스틱'처럼 TV나 모니터의 HDMI(고화질 영상) 단자에 연결해 이용한다. 크롬캐스트가 동영상 재생에 특화된 기기라면 컴퓨트 스틱은 PC의 기능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인텔은 이번 달부터 컴퓨트 스틱에 윈도를 내장한 모델을 149달러(약 17만원), 공개 운영체제인 리눅스를 쓰는 모델은 89달러(약 10만원)에 각각 판매하고 있다. 인텔의 브랜드 파워와 저렴한 가격을 감안하면 이 기기는 가정이나 기업에서 세컨드PC로 충분히 쓸 만하다는 평이다.

폴란드의 벤처기업인 마우스박스는 마우스 안에 소형 PC를 넣은 '마우스 박스(mouse box)'라는 제품을 선보였다. 겉으로 봤을 땐 일반 마우스처럼 생겼지만 속에는 고성능 프로세서와 128GB의 대용량 저장장치(SSD)를 갖췄다.

선 없앤 일체형PC도 인기

미니PC도 최근 1~2년 사이 각광받고 있다. 미니PC의 크기는 보통 TV에 연결하는 셋톱박스 정도다. 작은 것은 손바닥만 한 제품도 있다. 스틱PC는 성능이 태블릿PC보다 다소 높은 수준인 것에 비해 미니PC는 노트북PC 이상의 성능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CPU로는 주로 인텔의 고성능 제품인 '코어 i7' 혹은 '코어 i5'가 탑재된다. 메모리도 4GB 이상인 경우가 많다. 애플 '맥 미니(Mac Mini)', 레노버 '싱크센터 타이니(Tiny)', 대만 에이수스의 '비보(Vivo)' 등이 대표적인 제품이다.

미니PC·스틱PC가 소형화 트렌드를 이끌면서 고정형 데스크톱PC도 점차 날씬해지고 있다. 델이 작년에 출시한 '옵티플렉스'는 높이가 18.2㎝, 무게 1.28㎏이고, 두께는 3.6㎝에 불과하다.

모니터와 본체가 하나로 합쳐진 일체형 PC도 소형화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일체형 PC는 본체를 모니터 뒤편이나 거치대에 내장해 부피를 대폭 줄였다. 업계에서는 전체 PC 시장에서 일체형 PC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5.5%에서 올해는 10%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5' 전시회에서 곡면(曲面)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올인원 PC 7 커브드'를 공개했다. 이 제품은 27인치 크기의 고화질 화면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PC로 영화를 볼 때 영화관에 있는 것처럼 몰입감을 제공한다. 성능이 뛰어나고 모니터까지 포함한 제품이어서 가격은 미니PC나 스틱PC보다는 훨씬 비싸다. 홈쇼핑·유통점 등에서는 140만~150만원 정도에 살 수 있다.

LG전자는 영화 스크린과 같이 21대9의 화면 비율을 가진 일체형 PC를 내놓았다. 본체 두께가 20㎜에 불과할 정도로 얇은 데다 화면 크기는 29인치에 달한다. 독립형 TV 튜너를 장착해 PC 전원을 켜지 않고도 TV를 볼 수 있다. 가격은 145만~224만원이다.

전문가들은 PC가 스틱형보다 더 작아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PC는 메인보드, 메모리, 저장장치, CPU, 그래픽카드 등 여러 개의 부품을 하나의 공간에 모아놓은 기기인데 반도체 기술의 발달로 부품들이 끊임없이 작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문송천 교수는 "최종적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디스플레이만 남고 이를 구동하는 역할을 하는 PC는 아예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며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기기의 발달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① 마우스 박스(Mouse Box) ② 리바(Liva) ③ 미고패드(Meego Pad) ④ NUC(Next Unit of Computing) ⑤ Z박스 나노

마우스 박스(Mouse Box)

폴란드의 신생 기업 ‘마우스 박스’가 개발한 마우스 내장형 PC. 마우스 안에는 고성능 중앙처리장치(1.4㎓ 쿼드코어)와 128기가바이트(GB) 저장장치, 가속도 센서, 자이로스코프(gyroscope·회전의) 등이 들어 있다.

리바(Liva)

대만 ECS가 만든 윈도 운영체제 기반의 미니PC.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에 2.0㎓급 인텔 중앙처리장치(베이트레일-M 프로세서)에 32GB 용량의 저장장치를 갖췄다.

미고패드(Meego Pad)

중국의 미고패드가 만든 스틱PC. 윈도 8.1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구동시킬 수 있다.

NUC(Next Unit of Computing)

인텔이 ‘미니PC의 표준’을 목표로 만든 제품. 인텔 4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사용했다.

Z박스 나노

국내 업체 조택(ZOTAC)의 미니 PC. 주머니에 들어가는 손바닥만한 크기지만 고해상도 동영상과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