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들은 막대한 물량 공세로 TV 광고를 점령 중이다. 대형 대부업체 네 곳만 합쳐도 매년 평균 1200억원을 광고 선전비로 쓴다. 기아차, KT, 남양유업 같은 대기업 광고 예산에 맞먹는 규모다. 특히 대부업체는 지상파 광고를 못 하는 대신 광고 단가가 싼 케이블TV에 집중하기 때문에 노출 빈도가 훨씬 높다. 그래서 전체 케이블TV 광고 10편 중 한 편이 대부업·저축은행 광고다. 'TV를 틀면 나온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광고는 대부분 경쾌한 음악과 코믹한 화면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금융 문맹을 홀리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
대부업체 광고 전략의 두 키워드는 '쉽·빠·간'과 'TV'다. '쉽·빠·간'은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를 줄인 말로 광고업계에서 중요한 마케팅 개념 중 하나다. TV에 집중하는 이유는, 신문이나 잡지 등 인쇄 매체는 독자가 메시지에 집중하기 때문에 광고 내용을 신중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TV 광고는 짧은 시간 '이미지'에 성패를 걸어 시청자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기 쉽기 때문이다.
광고 제작사 이노션의 염철 본부장은 "대출이란 심사숙고해야 하는 문제인데, 마치 매우 가볍고 쉬운 일이란 이미지를 준다"고 말했다.
대부 광고에 무대리·봉대리 같은 '대리'나 계약직 영업 사원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젊은 층 직장인들이 대부업체의 최대 고객이기 때문이다. 대부업 이용자의 직업은 회사원이 58.5%로 절반이 넘고, 연령별로는 30대가 35%로 가장 많다. 대부업체 주 이용 계층인 '대리'를 내세워 '나만 대출받는 것이 아니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주는 전략이다.
'한 달 안에 갚으면 무이자'를 내세우는 업체들도 있다. 고금리 대부업체가 어떻게 이렇게 관대한 조건을 내세울 수 있을까. 한 달 안에 못 갚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부업체 이용자들을 대부 기간별로 보면 3개월 미만으로 이용하는 고객은 17.7%에 불과하고, 1년 이상 이용하는 비율도 48.3%에 이른다.
대부업체들은 "클릭 한 번, 전화 한 통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해 준다"고 광고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유는 신용 등급에 관계없이 무조건 고(高)금리를 물리는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용 등급 1~2등급도 대부업체에서는 30%대 고금리를 내야 한다.
방송광고심의위원장을 지낸 김민기 숭실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대부업체들이, 급하면 택시를 타는 것처럼 대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로 합리화해서 시청자를 심리적으로 무장해제한다"면서 광고에 나오는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누구나 간편히 대출'이란 말은 곧 '지옥까지라도 가서 빌려간 돈 받아내겠다'는 뜻이고, 신용 등급 따지지 않는다는 얘기는 '넌 여기 아니면 돈 빌릴 데 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입력 2015.03.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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