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가명·35)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 여성이었다. 한 달 200여만원의 월급을 받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혼자 먹고 쓰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던 김씨에게 어느 날 급하게 300만원쯤 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 은행으로 갔다면 연리(年利) 10% 이하로 어려움 없이 돈을 빌렸겠지만, 문득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재직증명서니 원천징수영수증 같은 서류도 준비해야 하고, 이것저것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게 번거롭잖아.' 김씨는 TV에서 봤던 여성전용대출 광고를 떠올렸다. 전화를 걸자 상담원은 밝은 목소리로 "신분증 하나면 곧바로 입금이 가능하고, 한 달에 10만원씩만 이자를 내면 된다"고 안내했다. 간단한 절차를 거쳐 상담원 말대로 통장에 마법처럼 300만원이 입금돼 있었다.

김씨는 빠른 대출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하지만 월 이자 10만원을 연리로 환산하면 은행이자의 4배에 달하는 40%에 이른다는 것, 그리고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으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게 돼 더 이상 은행 대출은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후로 김씨는 대부업체에서 두 차례에 걸쳐 600만원을 더 대출받았고, 점점 이자 갚기가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자가 연체되자 악몽이 시작됐다. 돈을 빌려줄 때는 천사 같던 대부업체 직원들은 악마로 돌변했다. 출퇴근길에 회사로 찾아오거나 수시로 전화를 걸어 "갚지도 못할 돈을 빌려놓고 편하게 사회생활할 수 있을 것 같으냐"며 윽박질렀다. 직장 동료들 보기 부끄러워 김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고, 곧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멀쩡한 직장 여성이 대부업체에 처음 전화를 건 순간부터 신불자가 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김씨는 "그때는 대부업체가 은행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몰랐고, 이자가 얼마인지도 따져보지 않았다"며 "돈 몇 백만원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한국인의 전반적인 금융 지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마스터카드가 지난해 하반기 실시한 금융이해도 조사에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16개국 중 13위를 차지했다.

1~3위를 차지한 대만·뉴질랜드·홍콩은 물론 필리핀(8위), 미얀마(9위), 베트남(11위) 등에도 못 미친다. 세계에서 가장 근면·성실하고 교육열 높다고 자부하는 한국인들이 돈 문제에서만큼은 문맹(文盲)에 가까운 것이다.

금융 문맹의 폐해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김씨처럼 멀쩡한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빚을 못 갚아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를 조정받은 사람(신용불량자)은 최근 5년간 14만8000명에 이른다. 이 중에는 의사, 공무원, 교사 등도 다수 포함돼 있다. 같은 기간 일용직이면서 신불자가 된 숫자(21만명)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 개인 회생 등 다른 제도를 통해 채무조정을 받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최근 5년간 30만명 이상의 급여소득자가 신불자로 전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매년 3000명 가까이 돈 문제 때문에 자살하고, 전체 가구 5분의 1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赤字) 상태에서 돈을 빌려 생계를 유지한다.

본지는 신용불량자 50여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와 설문, 광범위한 자료 조사 등을 통해 금융문맹의 실태와 문제점,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