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X를 액티브하게 엑스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난해 3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관 합동 규제개혁 끝장 토론회에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상근 부회장은 이 말 한마디로 주목받았다.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중국에서 천송이 코트를 구입하지 못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발언에 이어 나온 이승철 부회장의 말은 그의 번뜩이는 재기(才氣)를 잘 보여준 장면이 됐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장면을 의아하게 바라본 시각이 더 많았다. 당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이 부회장이 재계 대표로 발언했다. 전경련의 회장이 아닌 이 부회장이 대통령 앞에서 경제계 대표로 발언한 것은 격(格)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재계예선 이날 광경을 재계 큰 어른들인 총수들로 구성된 회장단을 보좌하는 사무국 대표인 상근 부회장이 마치 전경련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는 최근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손꼽고 있다.
애초 전경련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 우리나라는 대표하는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회장을 맡으며 국가적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회장보다 상근 부회장 등의 목소리가 외부로 나오는 횟수가 잦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회장 선임 과정에서 나타난 잡음들이다. 지난 2010년 조석래 회장(효성그룹 회장)이 건강문제로 전경련 회장직을 사임했을 당시 정병철 상근 부회장은 삼성그룹과 상의 없이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앞서 김우중 회장이 대우 부도사태로 물러났던 1999년에도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에 의지를 내비쳤지만, 당시 전경련 사무국의 고위 임원들이 부정적인 태도를 나타내면서 뜻을 접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최근 전경련 회장 선임과정에서 재계는 물론 전경련 회장단 내부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허 회장의 3연임이 확정된 것도 실제로는 전경련 사무국의 고위 임원들의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있다.
주요 기업의 전경련 담당 임원은 “전경련 회장 선임 과정에서 허 회장의 연임이 이뤄지지 않으면 상근 부회장 등 임원진의 대대적인 교체가 있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A그룹의 사장급 인사가 전경련 상근 부회장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면서 “연임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조성된 데에는 전경련 사무국 임원들의 ‘자리보전’ 본능이 있었다”고 말했다.
4대 그룹 고위 임원은 “전경련 회장의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사무국에서 당연히 회원사에 차기 회장에 뜻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할 텐데, 현재의 사무국은 이런 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 “전경련이 제 역할을 하려면 사무국의 대대적인 인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서는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현재의 조직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정단체인 대한상의 등은 정부로부터 예산 회계 감사를 받지만, 전경련은 순수 민간 경제단체라는 이유로 이런 통제기구가 없다.
회원사로부터 받는 500억원가량의 예산을 집행하지만, 이사회와 총회 등 형식적 절차만 거치면 외부 감사 없이 사무국에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게 전경련의 지배구조다. 전경련의 연 500억원가량의 예산 가운데 삼성은 110억원, 현대차와 SK는 각각 60억원, LG는 50억원가량을 각각 부담하고 있다.
이같이 부실한 내부 통제는 고위직들의 일탈행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전경련은 지난 2013년 12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해 서울 여의도에 초고층으로 지은 전경련 회관 준공식을 열었다.
하지만, 새 전경련 회관 준공식 불과 사흘뒤인 12월 20일 컨벤션홀에서 사무국 최고위 임원 자녀의 결혼식이 열리면서 재계에 논란이 일어났다.
컨벤션홀 대관 영업이 시작된 것은 2013년 10월부터였지만, 실제 컨벤션홀을 빌려 치뤄진 결혼식은 이 임원 행사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임원은 결혼식 축사에서 ‘딸의 결혼식을 내가 지은 전경련 회관에서 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원사인 기업들의 회비로 지은 건물을 사무국 임원이 마치 자신의 공적인 것 처럼 치켜세운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회원사인 대기업의 고위 임원은 "전경련은 예산집행과 인사권 행사를 사실상 상근 부회장이 독점하고 있다"면서 "대기업들이 전경련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는 것은 외부와 소통 없는 사무국 조직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리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인식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전경련 사무국은 이사회와 총회를 통해 결정된 예산과 조직운영 기준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면서 "자체 기준에 따라 예산 집행 등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