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양국 정상의 '실질적 타결' 선언으로부터 107일 만에 이뤄진 한·중(韓·中) FTA 가서명으로 상품과 서비스별로 언제부터 얼마나 관세를 인하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관세양허표〈표 참조〉가 공개됐다. 25일 가서명된 협정문에 따르면, 중국이 한국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10년 안에 관세를 없애는 품목의 비중은 80%, 한국이 중국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관세를 없애는 비율은 66%이다. 이는 타결 후 10년 내 관세 철폐 비율이 100%였던 한·미(韓·美) FTA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한·중 FTA는 한국 농민과 농산물 보호 문제로 인해 중국에 강하게 공산품 시장 개방을 요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지만 한·중 교역을 한 단계 도약시킬 발판을 구축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활성화·韓流 확산에 도움
이번 가서명안에서 가장 돋보인 부분은 개성공단 생산 품목에 대해 '메이드 인 코리아'와 동일한 지위를 얻었다는 점이다.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310개 품목에 대해 한국산 원산지 지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지금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생산하는 품목 270개에 앞으로 생산할 가능성이 높은 40개 품목을 추가한 것이다. 앞서 체결한 한·EU(유럽연합) FTA에서는 267개, 한·인도는 108개, 한·아세안(ASEAN)이나 페루, 콜롬비아는 100개 품목만 원산지 지위를 얻은 것에 비해, 역대 FTA 중 가장 개성공단에 우호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은 중국 진출 교두보를 확보해 제2의 도약기를 맞을 수 있게 됐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나인JIT의 이희건 대표(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는 "한·중 FTA가 발효되면 개성공단에서 의류, 신발, 밥솥 등의 완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큰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며 "중국에서 한국산 제품의 이미지가 높아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내 한류(韓流) 열기를 비즈니스 기회로 활성화하는 발판도 마련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중 공동 제작 영화에서 한국 측의 재정·기술적 기여도가 20% 이상이면 중국의 스크린쿼터 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부분이다. 또 한국 관광회사가 중국 내에서 한국이나 제3국으로 여행할 관광객을 모집하는 행위를 허가하는 방안을 중국 정부가 긍정 검토하기로 합의한 점도 성과로 꼽힌다. 상하이 자유무역지대(FTZ)에 중국 측과 합작 법무법인(로펌)을 세워 중국 전역을 상대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게 됐다.
◇한국상품 온라인 구매, 흰 우유·김치 수출 등 해결해야
하지만 남은 과제도 많다. 특히 중국 소비자가 한국의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한국 상품을 직접 구입하는 '역직구(逆直購)' 같은 전자(電子)상거래 활성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인들이 한류 관련 제품을 한국으로부터 구입하고 싶어도 상당한 관세를 물어야 해 소비가 미미한 탓이다. 지금은 중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이 세액(稅額) 기준으로 50위안(약 8700원) 이하일 때만 무관세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중국 측에 200달러(약 22만원) 이하 소액 화물에 대해 비과세(非課稅)를 요구했으나, 중국 측은 "현행 관세법상 수용하기 힘들다"며 거부했다.
김치 수출 등을 가로막는 중국의 비(非)관세 장벽도 미해결 상태다. 중국 당국이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검역 기준 같은, 관세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한국 기업들의 수출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중국 정부는 발효식품인 한국산 김치에 대해 중국 절임 채소인 '파오차이(泡菜)'의 위생 기준(100g당 대장균군 수 30마리 이하)을 적용해 수입을 막고 있다. 중국은 또 살균(殺菌) 방법과 유통기한이 자국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로 작년 5월부터 한국산 흰 우유(살균유)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고준성 산업연구원(KIET) 박사는 "중국의 비관세 장벽은 운영의 불합리성이나 행정 절차의 후진성, 공무원들의 일관성 결여 같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며 "수출 현장과 기업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실효성 있는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