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미아역 근처 '도봉로'. 미아역과 종암동 사이 3㎞ 길이의 거리에는 메르세데스 벤츠를 비롯해 렉서스, BMW 등 고급 수입차 전시장 6곳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산사거리, 분당 등 부촌의 상징과 같았던 수입차 전시장이 서울 강북에도 등장한 것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수입차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수입차 업체들이 강남, 분당, 목동 등 특정 지역을 벗어나 전국 주요 곳곳에 매장을 세우고 있다. 도봉로 수입차 거리는 수입차의 성장세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의 하락세를 동시에 보여주는 현장이다.
현대와 기아차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국내 시장점유율 70%를 굳건하게 지켜왔다. 하지만 지난해 수입차의 공세 앞에서 70%가 무너졌고, 올해는 얼마나 더 수입차에 시장을 빼앗길지 예측하기 어렵다. 나아가 현대차그룹이 가까운 미래에 수입차와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5위 완성차 업체다. 하지만 스마트카 등 미래차 경쟁력은 아직 양산에 이를 정도의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현대차가 2018년까지 81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스마트카 개발을 강조함으로써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그룹차원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거액을 미래 성장동력에 쏟아부으며 시장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기아차의 노력이 충분한지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비록 한국을 뒤따르는 후발주자이지만, 그들의 막강한 자본력과 내수시장은 언제든 현대차그룹을 위협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샤오미가 삼성전자를 위협할 줄 아무도 몰랐던 점을 생각하면 현대차도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만약 중국 기업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향후 매물로 나온 글로벌 자동차 업체를 인수한다면, 한 번에 현대차그룹을 치고 올라설 수도 있다.
실제 지난해 초 중국 둥펑(東風)자동차는 유럽 자동차 시장 2위인 프랑스 푸조·시트로엥그룹(PSA) 지분 14%를 획득하며 글로벌 업체 인수를 시도했다. 다만 프랑스 정부가 둥펑과 같은 지분을 인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영권 방어장치를 마련했다.
올 초에는 미국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와 북미오토쇼(NAIAS)에서도 경쟁회사에 비해 현대차그룹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아우디는 CES에서 자사의 콘셉트카 ‘A7’이 운전자 도움 없이 900㎞를 주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도 콘셉트카 'F015 럭셔리 인 모션'을 통해 자율주행차를 선보였다.
그야말로 자동차와 IT가 융합된 미래형 차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CES나 북미오토쇼에서 선보인 차에선 혁신성을 찾기 어려웠다.
가까운 시일 안에 미아리 수입차 거리에도 스마트카를 비롯해 첨단 기술로 무장한 수입차들이 등장해 소비자들을 유혹할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화려한 수입차 거리에서도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려면 미래를 위한 경쟁에 더 치열하게 뛰어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