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에 사는 회사원 김모(42)씨는 작년 봄부터 자가용을 버리고 지하철 출퇴근족(族)이 됐다. 그전엔 광화문에 있는 회사까지 20여㎞를 자가용으로 다니면서 회사 인근 주차장에 월 18만원씩을 냈다. 김씨는 "한달 30만원 정도 들던 휘발유 비용이 요즘 20만원 밑으로 내렸지만 다시 차를 몰고 다닐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서 에너지 대외 의존도는 97%, 무역의존도는 82%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국제 유가는 하향세를 보이고 수출은 견조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경기(景氣)는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상(異常) 현상이 고착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국내 휘발유 값은 연초 대비 16% 정도 떨어졌는데도 차량 한 대당 휘발유 사용량은 오히려 감소했다. 유가가 떨어지면 차량 운행이 늘어나는 경제 상식과 정반대의 현실이 된 것이다. 수출도 외형 규모는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지만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비율은 전년도보다 13%포인트 낮아졌다. 수출 주도로 한국 경제가 뻗어가던 시절과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왜 벌어지고 있으며, 대안은 뭘까?
◇유가 하락과 수출 증가에도 한국 경제 '꽁꽁'
본지가 2일 국토교통부의 차량 등록 대수 통계와 한국석유공사의 석유 제품 소비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차량 한 대당 휘발유 평균 소비량은 1년 전보다 2% 정도 줄었다. 휘발유 소비량이 감소한 것은 유가가 급등했던 2004년 이후 만 10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지난해 8월 휴가철은 물론 국제 유가가 급락한 11월에도 휘발유 소비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 줄었다. 저유가가 소비 활성화에 도움이 못 되고 있는 것이다.
수출이 한국 경제성장을 이끌던 힘도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수출의 국가 경제성장 기여율은 38%로 분석됐다.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에서 수출에 의한 실질 부가가치액 증가분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재작년 수치는 2012년(51%)보다 13%포인트 하락한 것이며, 2008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10년간 평균치(72%)와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한편 2013년에 수출로 생겨난 일자리는 400만2000개로 전년보다 1만개 정도 늘었다. 하지만 2012년 한해 증가폭(28만7000개)과 견줘보면 비교 자체가 무색할 지경이다. 전체 취업자에서 수출이 유발한 취업 인원 비중(16%)도 전년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수출의 일자리 창출 능력도 예전만 못해진 셈이다.
◇대안은 '수출과 內需 쌍끌이' 체제로 변신
이런 현상이 벌어진데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신민영 LG 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휘발유 값 인하에도 운전자가 줄어든 것은, 운전자들이 떨어진 유가보다 냉골 수준의 체감(體感) 경기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라며 "특히 고령화 추세가 급진전되는데다 당분간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란 불안심리가 가장 큰 제약 원인"이라고 말했다.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 하락 원인에 대해서는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로 수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유력한 대안으로는 수출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내수(內需)를 살리는 방안이 꼽힌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앞으로 의료·교육 서비스산업 등 내수 부흥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워 '수출과 내수'의 쌍끌이 체제로 한국 경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도 "기름 값과 수출 같은 몇개 변수에 일희일비를 거듭하던 개도국 수준을 벗어나 내수와 수출이 함께 이끄는 선진국형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했다.
수출 산업의 경쟁력도 다각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세환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수출 없는 한국 경제는 아직 생각할 수 없다"며 "수출 확대 여력이 큰 소비재 및 서비스 분야를 수출 산업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