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에 있는 CJ제일제당 인천3공장. 연안부두를 따라 사료나 시멘트 등을 보관하는 원통형 저장탑과 물류센터가 길게 이어지는 거리 한쪽에 커다란 탱크와 연결 파이프가 얽힌 2만5575㎡(약 7750평) 공장 부지가 있다. 이곳에서는 해바라기유·대두유 같은 업소용 식용유(食用油)를 생산한다.

주문이 꾸준히 늘면서 이 공장의 생산량은 2009년 4만5000㎘에서 지난해 7만㎘까지 늘었다. 문제는 앞으로다. 계속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최근 5000㎡(1500평) 정도 공장을 증축하려 했지만, 현행 법령상 3000㎡ 이상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 포기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다. 공장 한쪽 편에 있는 약 500㎡(약 150여평) 공터에 식용유 저장탱크를 지으려는 계획도 포기하고 대신 제2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운제 공장 유지생산총괄2팀장은 "외부에 주차장이 따로 있기 때문에 이 부지는 놀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주문량이 늘어나도 저장탱크 지을 공간이 없어 앞으로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 인천3공장 부지 내에 있는 공터. 규제 때문에 건물이나 시설물을 지을 수 없어 방치되고 있다.

수도권 규제로 인해 이 지역에 자리 잡은 기업들은 공장 부지 내 빈터에 저장탱크나 창고, 심지어 임시 사무실 하나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파주 LG디스플레이 사업장이나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 단지처럼 수십조원씩 투자하는 대기업은 공론화를 통해 예외적으로 증축 허가를 받기도 하지만, 규모가 작은 대기업이나 중견·중소기업은 이럴 여력이 없어 속만 끓이고 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에 따르면 수도권 규제만 풀리면 당장 투자로 연결되는 규모가 경기도에서만 2조원, 인천·서울을 합치면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최복희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중견·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투자 관련한 애로 사항을 정부에 제기할 여력이 없다"면서 "불합리한 규제로 기업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는 상황이 3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규제개혁본부장은 "수도권 투자·개발을 억제하면 그 효과가 지방에 미친다는 이른바 '풍선효과'는 폐쇄 경제일 때나 가능한 얘기"라면서 "글로벌 개방 경제 아래서는 수도권 투자가 막히면 기업들은 지방이 아니라 해외로 나간다"고 말했다.

비타민이나 건강 보조 식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뉴트리바이오텍은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있는 공장을 증축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당초 1만3320㎡인 공장을 작년 11월 2만5000㎡로 넓히긴 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여기서 시설을 더 늘리면 3만㎡를 넘고, 3만~6만㎡ 공장 부지 증설은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수도권 정비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산업단지에 포함된 공장이 아닌 개별 공장이 정비위 심의를 통과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천시 관계자는 "지난 20년간 두 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비위 통과를 위한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정비위 심의를 위해 투자 계획의 실효성을 증명하는 연구 용역 보고서를 발주해 만들어야 하는데 중소기업으로서는 보통 부담이 아니라는 것. 산업단지 지정을 받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산업단지 지정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폭 15m 이상 진입로가 확보되어야 하지만 하천 제방 인근에 있는 이 공장은 간척(干拓)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진입로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뉴트리바이오텍 관계자는 "일단 본사 추가 확장을 유보한 상태"라며 "미국 댈러스, 중국 등에 새 생산 시설 건립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 규제 때문에 뱀처럼 꼬인 소주 생산 라인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5만8805㎡ 부지에 있는 빙그레 공장은 2001년 판매가 부진한 라면 생산 라인을 폐쇄하고 치즈나 요구르트 등 유제품(乳製品) 라인으로 개조하려 했다가 계획을 접어버렸다. 자연보전권역 안에서 새로운 시설을 만들 때는 이전보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라면 창고로 쓰던 2204㎡(약 670평)짜리 건물은 14년째 비워둔 채 놀리고 있다. 라면 생산이 중단되면서 이 창고를 없애고 대신 100m 떨어진 유제품 공장 옆에 유제품 창고를 지으려 했으나 '기존 창고를 헐더라도 새 구조물을 만들면 공장 면적이 늘어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유권해석이 나왔다. 즉 2204㎡짜리 유제품 창고를 지으면 자연보전권역 내 공장 부지 상한선인 6만㎡를 넘는다는 이야기다.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하이트진로 공장. 수도권 규제 때문에 공장을 확장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내부에 생산 라인을 최대한 늘려 집어넣다 보니 구불구불 빽빽하게 꼬여 있다.

경기 이천시 부발읍에 있는 하이트진로 공장은 생산 라인이 뱀처럼 꼬불꼬불하게 꼬여 공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지나다니는 길이 안 보일 정도다. 이 공장은 수정법이 생기기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전체 부지 면적이 17만5257㎡나 되지만 수도권 규제로 공장 내에서도 마음대로 생산 시설을 더 지을 수 없다. 궁여지책으로 생산 라인을 기존 공장 내에 억지로 우겨넣다 보니 보통 일직선인 생산 라인이 구불구불 꼬여 버린 것이다. 그나마도 부족한 생산량은 100㎞ 떨어진 충북 청주 공장에서 생산해 운반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원액(原液)은 이천에서 생산하고 청주에서는 원액을 병에 담아오기만 한다"면서 "이런 단순 작업을 위해 물류비가 30~40%가량 더 들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규제 효력 상실한 지 오래

지금은 규제가 풀렸지만 2009년 경기 여주에 들어섰던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도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와 법 규정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도로를 사이에 둔 아울렛 건물 2개의 소유주가 같으면 한 건물로 간주하고, 수도권 자연보전권역 내 판매 시설은 1만5000㎡를 못 넘는다'는 규제 때문이었다. 신세계 아울렛의 건물 규모는 각각 1만2764㎡, 1만4354㎡이다. 신세계는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한 건물은 신세계첼시, 다른 건물은 신세계 명의로 소유주를 다르게 신고했다. 당시 신세계첼시 측은 "현행 수정법상 소유주가 동일하고 연접한 건물이 규제 대상인 만큼 소유주가 변경되면 규제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건교부도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았다. 경기도 관계자는 "신세계 아울렛 규제는 융통성이 없는 '불량 규제' 전형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과)는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투자하려면 수도권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면서 "다만 이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비(非)수도권 지역에 정부 정책 자금을 추가 지원하는 등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은 "정부 차원에서도 수도권 규제 상당 내용이 낡고 불합리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가시적인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