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은 2009년 동부산관광단지 50만㎡ 땅에 영화·방송 콘텐츠를 일반인이 체험할 수 있는 한국형 유니버설스튜디오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작년 6월 사업을 포기했다. 2500억원의 건설비 투자 결정을 못한 탓이다. CJ그룹은 작년 경기 광주시 10만㎡ 땅에 착공하려던 수도권 택배허브 터미널 사업도 무기한 연기했다. 3000억원의 투자비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작년 CJ그룹의 투자는 2011년 수준인 1조9000억원대로 떨어졌다. 작년 초에 잡았던 2조4000억원보다 20% 넘게 낮은 액수다. 2013년에도 3조2000억원 투자 계획을 잡았다가 20%는 이행하지 못했다.

투자 감소는 CJ그룹의 경영이 사실상 정지(停止)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CJ그룹은 2015년 경영 계획도 확정 못한 상태다. 탈세 혐의로 구속된 이재현 회장이 이르면 다음 달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어 정기 인사나 채용 계획 같은 오너의 최종 결심이 필요한 경영 업무는 마냥 연기되고 있다.

이재현 회장 장기 不在의 후유증

CJ그룹은 이 같은 상황의 원인으로 이재현 회장의 부재를 들고 있다. 이재현 회장은 2013년 7월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지금까지 1년 6개월째 경영 일선에서 떠나 있다. 이 회장은 신장(腎臟) 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이 악화해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총수가 없다보니 수천억원이 드는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경영 계획도 못 짜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현 회장이 그동안 그룹 경영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쳐왔기 때문에 이 회장의 부재 여파의 충격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CJ그룹은 2011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뒤 사업 확대를 위해 해외 물류 회사를 적극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2013년 4월에 중국 업체 하나를 인수한 뒤에는 단 한 건도 성공하지 못했다. 2013년 9월에는 미국의 피닉스 인터내셔널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인수 금액을 결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막판에 포기했다. CJ제일제당도 작년 중국과 베트남에서 동물사료용 아미노산 공장을 인수하려다가 성사 직전에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CJ 관계자들은 "2년간의 투자 부진이 미래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통운 인수 등으로 그룹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2013년부터는 정체 상태다.

전문 경영인으로 총수 空白 최소화 노력

그러나 CJ의 투자 부진을 이 회장의 부재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CJ그룹은 이 회장 구속 직후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 그룹 경영위원회를 만들었다. 손경식 회장, 이미경 부회장, 이채욱 CJ㈜ 대표이사 부회장,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이 구성원이다. 이 중 손경식 회장은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며, 이미경 부회장은 누나다. "오너 일가가 4명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경영위원회가 이재현 회장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은 경영 정지 상태의 부분적인 이유일지는 몰라도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CJ그룹도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해 이재현 회장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원래 2013년 CJ대한통운을 맡기 위해 스카우트된 이채욱 부회장이 그룹 전체 경영을 맡는 CJ㈜ 대표이사로 옮기고, 그 자리에는 양승석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급히 수혈됐다.

비슷한 시기 그룹 경영위원회의 실무를 맡는 '경영총괄'도 CJ올리브네트웍스 대표로 자리를 옮긴 허민회 부사장 후임으로 신현재 CJ대한통운 부사장을 임명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CJ 관계자는 "오너가 있는 대기업 그룹에서 전문경영인이 수천억원씩 들어가는 투자 결정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니냐"며 "지난 1년 6개월간의 투자 공백이 향후 미래 성장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