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금융회사 수장들은 신년사에서 핀테크, 인터넷은행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핀테크기업이나 벤처업계에선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핀테크기업들은 은행의 비협조로 서비스 준비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핀테크기업은 온라인 송금을 기본으로 이용자를 모은 뒤 간편결제 및 금융상품 판매로 수익을 내야 하는데, 상당수 은행이 자금출납에 대한 권리를 함께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은행만 출범시키겠다는 건 벤처기업의 핀테크산업 진입을 막겠다는 '알박기 의도'"라고까지 말했다.
물론 은행도 할말은 있다. 일단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또 은행 스스로 핀테크를 잘 준비하면 독식할 수 있는 시장인데 굳이 핀테크기업과 나눠 먹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은행 또한 수익 추구를 하는 기업인 탓에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 핀테크 기업들, 공무원 설득보다 은행원 설득이 힘들다
핀테크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곳 중 하나인 비바 리퍼블리카. 이 회사는 지난해 간편결제에 대한 기술을 확보하고도 국내에서 투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해외에서 펀딩을 받아 유명해졌다. 기타금융업체로 분류돼 있어 국내 창투사에선 자금을 받을 수 없는 '규제' 때문이었다. 비바 리퍼블리카는 결국 미국계 벤처캐피탈인 알토스벤처스로부터 투자금을 받았다.
그런데 이 회사 조차도 이달말 서비스의 공식 론칭을 앞두고 은행 제휴 문제와 관련해서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같이 하겠다고 한 시중은행은 3곳 정도다.
후발주자들의 고충은 더 큰 것으로 파악된다. 아예 같이 하겠다고 나서는 은행이 없어 기술을 확보하고도 베타 서비스조차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다수다.
은행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일단 금융사고 시 책임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무래도 사고가 터지면 책임 소재를 가리기 힘들다"면서 "다음카카오야 그래도 덩치가 있으니 어느 정도 협의가 가능하겠지만 벤처기업들은 은행이 모두 뒤집어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있다"고 말했다.
핀테크기업은 투자금 유치, 금융감독원의 보안성 심의 통과 등 수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했다. 그나마 금융감독당국은 창투사의 기타금융업 투자 허용, 보안성 심의 완화 등을 검토키로 하면서 핀테크기업에 숨통을 트여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은행이 움직이지 않아 실제 서비스 출시까지는 계속 고행의 길을 밟아야만 하는 상태다.
◆ 은행, 왜 우리 것을 나눠먹나? 생각하는듯
벤처업계에서는 '혹시나 인터넷금융시장을 벤처기업이 다 가져가면 어떡하나'라는 불안감이 은행을 보수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고 말한다.
한 벤처기업 대표이사는 "은행은 온라인시장을 기존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만 인식하고 있다"면서 "자금 이체의 90%가 인터넷뱅킹, ATM기 거래로 이뤄지는데 이 곳에서 돈을 벌 생각은 안하고 그냥 막대한 적자만 수년째 감수하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온라인 송금 수수료는 핀테크기업이 부담하고, 추후 간편결제나 인터넷 금융상품 판매로 얻게 되는 이득은 나누자고 하는데도 은행들은 '왜 우리가 직접 할 생각은 안하냐'고 경영진이 질책할까 두려워 이도 저도 안하고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벤처기업 관계자는 페이스북에 '은행이 인터넷은행을 설립하겠다는 건 일종의 알박기'라는 평을 남겼다. 은행들이 혹시나 기존 시장을 빼앗길까봐 수익화에 대한 고민 없이 일단 추진하겠다고 선포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은행들은 핀테크가 워낙 넓은 의미의 개념이라 '비협조적이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당연히 각 사안을 놓고 벤처기업과 은행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면서 "핀테크가 광의의 개념이고 추진되는 사안이 많다보니 실무부서에서 각 안건별로 입장이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