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2일 오전 11시쯤 경남 거제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이 회사의 사내(社內) 대학교인 '중공업사관학교'에선 3기생 학생 50여 명이 선박에 들어가는 장비인 '선박 의장(艤裝)'과 '회계학' 과목 기말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유리창으로 조선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교실은 여느 대학 강의실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학생들이 모두 고등학교 졸업 후 작년 1월 대우조선해양에 입학한 고졸 사원들이라는 점이었다.
3기생 박세은(20·부산국제외국어고 졸업)씨는 "고등학교 때 조선일보 기사를 읽고 '중공업사관학교'에 관심을 갖게 돼 입사를 결심했다"며 "수업 수준도 높고 이과(理科) 과목이 어렵긴 하지만,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고 내가 실제로 일을 할 때 필요한 것을 배우니까 재미있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3년 4개월 전, 대우조선해양이 '우수 고졸 예정자 정규직 채용 및 육성 프로그램'이라는 '학력 파괴' 채용 계획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이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고교 졸업생을 따로 뽑아 사관학교 사내 교육 과정을 7년(군복무 포함) 만에 마치면 대졸 신입사원과 인사·승진 등에서 동등한 대우를 해주겠다는 이 프로그램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상당했다. 하지만 기자가 이날 찾아간 '중공업사관학교'에는 "중공업 전문 인력이 되겠다"는 20대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현재까지 1~3기 235명을 뽑았는데 중도 탈락자는 7명에 불과하다.
사관생도의 남녀 구성비는 68(남성)대 32(여성). 전체 228명 중 120명은 군복무 중이다. 현재 4기 채용 절차가 진행 중이다.
◇"대학 갔다면 이 직장 취직 못 했을 것"
사관학교 1기생인 사공현(22)씨는 조선소 건설 현장에서 용접 작업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검사하고 있었다. 사관학교 1학년을 마친 뒤 해병대를 다녀온 그는 지난달 15일 복귀해 탑재1그룹에서 OJT(직무교육)를 받고 있다. 사공씨는 "명문 대학을 다니는 군 동기들이 취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며 "다들 나보고 '요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데 넌 정말 좋겠다'며 많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중공업사관학교'에서는 입학 1년 동안 조선해양공학 과목과 기본교양 과목을 배운다. 여기에는 업무에 필수적인 외국어 교육은 물론 역사·영화·미술·음악 등이 포함된다. 2학년이 되면 남학생은 군대로, 여학생은 현업 부서에 배치돼 실무교육을 받는다. 실무교육을 받을 때는 낮에는 현업 부서에서 근무하고 밤에 수업을 듣는다. 군복무는 물론 교육 기간도 모두 근속 연수에 포함된다.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에 합격했지만 포기하고 이곳에 입사한 문성호(20·한국디지털미디어고 졸업)씨는 "솔직히 제가 그냥 대학에 진학했다면 이렇게 좋은 회사에 못 들어왔을 것이라는 걸 잘 안다"며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업 부서 "사관생도 더 많이 보내달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중공업사관학교'에 들어온 순간, 25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남들은 아르바이트하며 대학등록금을 벌어야 할 때, 월 200만원 이상씩을 받으며 공부하는 것이다. 게다가 교육비와 교재비·기숙사비는 무료이고, 가방·신발 등 비품까지 모두 회사가 지급한다.
또 인성교육을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기타·드럼·색소폰 등을 배우는 '1인 1악기', 배드민턴·탁구·수영 등을 배우는 '1인 1운동'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정유진(20·거제해성고 졸업)씨는 "여기서도 동아리 활동은 물론 교양 과목 등을 들으며 웬만한 대학보다 더 나은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며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더라도 이곳에 꼭 입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한 만큼 성과도 나오고 있다. 권종석 인사팀 부장은 "중공업사관학교 출신 학생들이 업무 능력은 물론 적응력도 빠르고 애사심(愛社心)이 높다 보니 현업 배치할 때가 되면 많은 부서에서 사관생도를 더 많이 보내달라는 요청이 쏟아진다"며 "올해 4년째를 맞아 교육 체계와 방식 등도 확실하게 잡혀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