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층이 속 곯아 암으로 죽는다면, 청년층은 애쓰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중략) 청년이 이 사회의 허리입니다. 허리를 이렇게 끊으면, 달릴 힘이 어디서 날까요?”

지난 11월, 연세대와 고려대에 ‘생존의 문제’를 담은 대자보가 붙었다. 아직 사회에 발도 내딛지 않은 청년들에게 ‘생존’이란 단어가 붙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세대가 그리는 우울한 미래는 부모 세대로 옮겨간다. 이 글은 “요즘의 대학생들은 평균 1300만원쯤의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하고, 빚을 본인이 갚지 못하면 부모 빚이 되며, 청년들이 취업에 실패하고 창업해서 망하면 부모님이 받을 연금을 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청년층은 불안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학자금 대출을 쌓여 가는데 많은 돈을 들여 좋은 스펙을 만들더라도 취직은 점점 어려워진다. 좋은 일자리를 얻는 데 실패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몰리고, 그 불만을 기성세대에 돌린다. 미래세대의 기반이 부실해지면서 나타나는 세대갈등이다.

해결책은 단순하다. 미래세대가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갖게 하고, 자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돈이 흐르게 하면 된다. 세대 갈등은 결국 이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

미래세대로 돈이 흐르게 하자

자료: OECD, 한국은행

미래세대의 불안은 청년 실업에서 기원한다. 청년 실업률 자체는 다른 나라보다 낮은 편이지만, 실제로 얼마나 고용됐는지를 보면 상황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의 15~29세 청년의 고용률은 4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포인트 정도 낮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취업 재수를 택하는 청년층이 많다는 뜻이다.

청년실업은 단순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넘어, 청년들이 일자리를 갖겠다는 의지를 꺾는다. 박길성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을 갖고 월급을 받은 경험이 있는 실업자는 고용시장이 어려워도 다시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청년은 취업 진입이 힘들면 아예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며 “아르바이트, 임시직 중심의 청년층 고용 구조는 장기적인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층이 정규직으로 경력을 쌓으면서 자산을 모아야 세대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도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언제 일을 관둬야 할 지 모르는 비정규직은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경험 지식을 축적할 수 없다. 청년층 고용율이 낮아지면 우리 사회가 발전하며 일궈온 사회적 자산은 전수되지 않고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는 청년들이 결혼을 늦추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원인이 되며, 이때문에 국가 경쟁력도 약화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2012년 설문조사에서 ‘결혼을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남성 응답자의 68.0%가 ‘주택 구입 등 결혼 자금 문제’라고 답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남성의 초혼 연령은 1990년 27.8세에서 지난해 32.2세로, 여성은 24.8세에서 29.6세로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청년 실업에 대응하는 정책이 미진해 미래세대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직접적 일자리 창출 혜택이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청년층이나 경력단절 여성이 아닌 장년층에게 대부분 돌아가고 있다"며 "직접적 일자리 사업에 편중된 재원 배분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실업자를 중심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자리를 나눠 불안한 청춘에 여유를 주자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은 정년 연장에서 촉발됐다. 고령화가 심화되고, 노후에 대비하기 위해 회사를 더 오래 다녀야 한다는 지적에 청년층이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내후년부터는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근로자의 정년이 60년으로 늘어난다. 정년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반대로 그 만큼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게 돼 앞으로 회사에 취직할 청년들에게는 좋지 않다.

그러나, 제조업의 경우 20년 이상 일한 사람 한 명의 인건비는 신입 직원의 2.8배 수준이다. 58세 정년이 된 사람이 퇴직하면 20대 청년 세 명을 뽑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현 상황에서 정년 연장과 청년층에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모두 달성하려면 임금피크제가 필수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고용 창출 능력도 뛰어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2005년보다 2007년에 고용자수가 평균 20.3명 늘었지만, 도입하지 않은 기업은 17.9명 줄었다.

정부는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노조 반발에 쉽지 않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권장한 공공기관 117곳 중 제도를 도입한 회사는 30여곳 수준이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미래세대에는 미래가 없다

취직이 점점 어려워지고, 좋은 일자리를 얻기도 어려워지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미 100만명이 넘는 20대가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이다.

자료: 통계청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비정규직 가운데 20대의 비중은 지난해 8월 17.3%에서 1년 뒤인 올해 8월 17.9%로 늘었다. 20대 이상 연령대에서 은퇴 시기를 지난 60세 이상 계층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비정규직 비중이 늘어났다. 한시적으로 일하는 20대는 1년간 4.7% 늘었지만, 시간제 근로자는 15.7% 증가했다.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근로를 ‘업’으로 삼는 20대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20대 비정규직의 확산은 국가적인 경쟁력을 낮추는 원인이 된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64.2% 수준이어서, 결혼을 위한 경제적인 여건을 갖추기 힘든데, 이런 상황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청년이 양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보다 결혼하는 비율이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일본 정부의 설문조사 결과 30~34세 남성의 결혼율은 정규직이 59.6%지만, 비정규직은 30.2%에 불과했다.

비정규직도 세대갈등이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세력화한 대기업생산직 노조는 정규직 일자리의 ‘세습’도 협상을 통해 얻어냈고, 취직할 기회를 갖지 못한 청년층은 계약직으로 밀려났다.

임금 뿐만 아니라 열악한 비정규직의 근로 여건도 개선돼야 한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근로 조건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의 격차를 해소하고,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기업주에 대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년층 근로자에게 세심한 대책 제시해야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면 세대간 충돌이 발생하기 전에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보다 이 쪽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베이비붐세대가 퇴직 후 성급하게 창업했다가 폐업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노동 수요자에게는 장년층 고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장년층이 노동시장에서 완만히 이탈할 수 있도록 가교 일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좋은 일자리는 청년층에 양보하고, 은퇴자금을 마련한 중년층은 ‘제2의 인생’으로 안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 연구원은 “퇴직 후 창업을 준비할 경우 경영 노하우를 충분히 습득해 ‘준비된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안으로는 영국의 중고령층 고용네트워크가 꼽힌다. 고용네트워크는 중고령층의 구직, 경력개발, 훈련, 진로모색 등을 돕는 기구다. 또 미국과 일본, 덴마크는 고령 취업자들을 위해 직업능력 개발, 취업 알선과 복지 프로그램을 일원화해 제공한다.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형 선진 고용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정책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