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쿼터(quarter·분기)가 아니라 쿼터 센추리(quarter century·25년)를 보고 투자합니다." 캐나다연금 투자이사회(CPPIB)는 장기 투자 원칙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모토를 내걸고 있다. 캐나다뿐 아니라 대부분의 연기금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 가능한 연금을 만든다는 목표로 투자 전략을 짠다. 반면 국민연금은 5년짜리 중기 계획이 전부고, 몇십년 뒤에 고갈된다는 암울한 전망으로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출범 30년이 채 안 된 젊은 연금인 국민연금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다른 연기금에 비해 훨씬 유리한 위치다. 그런데도 비전과 전략 부족으로 기금 운용에서 장기 투자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장기 전략도, 목표도 없는 국민연금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이 근시안적으로 이뤄지는 가장 큰 이유는 기금 운용 목적이 뚜렷하게 설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캐나다연금은 향후 75년간 존속될 수 있도록 기금을 설계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4년마다 점검을 실시해 포트폴리오를 재편한다. 네덜란드 공적연금(APG)은 자산이 부채의 130%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미래의 부채(향후 지급될 연금)에 맞춰 자산(보험료와 운용 수익)을 관리하는 이런 기법을 자산부채관리(ALM·Asset Liability Management)라고 하는데, 보험사나 연기금 등 장기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들에는 필수적인 금융 기법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에는 이 같은 장기적인 목표가 없고, ALM도 도입돼 있지 않다. 매년 '실질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 정도 수익률을 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로 설정돼 있다. 미래의 지출에 맞게 기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적당히 굴리고 보자는 식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추계도 그다지 믿을 것이 못 된다. 장기 추계는 2070년까지 국민연금의 예상 수익률을 '회사채 수익률×1.1배'로 가정해 만들었는데, 이 가정이 자의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로 계산 방식에 따라 연금 소진 시기도 크게 달라진다. 복지부의 장기 추계에 따르면 기금 소진 시기는 2060년이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그 시기를 2053년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고투자책임자 임기 2.5년에 불과

기금 운용 인력의 짧은 임기도 장기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세계 최고 수준 수익률을 내는 것으로 유명한 83년 역사의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는 이제까지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13명의 평균 재임 기간이 6.4년이었다. CEO 교체기에 1년씩 짧게 대행을 맡았던 5명을 빼고 계산하면, 정규 CEO들의 재임 기간이 평균 9.6년까지 늘어난다. 해외 연기금 중 최고 수익률을 내고 있는 캐나다연금투자이사회(CPPIB) 역시 전임 CEO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장수하며 굵직한 해외 대체 투자를 이끌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1987년 공단 설립 이래 28년간 이사장 14명이 거쳐가, 평균 1.9년의 초단기 재임 기간을 기록 중이다. 99년 출범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 역시 평균 2.5년 자리를 지키는 데 그쳤다. 보장된 임기 2년에 1년씩 임기 연장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교체되는 시점에 자리를 떠나 채 3년도 자리를 보전하지 못했다. 지난해 이찬우 당시 본부장도 2년 임기를 마친 후 1년 유임에 들어갔지만, 최광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결국 몇개월 못 가 새로운 본부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영위원회 위원 또한 최근 10년간 평균 재임 기간이 1.5년에 불과하다.

"단기 수익률에 연연 말아야"

국민연금처럼 최소 30~40년 앞을 바라보고 장기 투자 해야 하는 기금에서는 단기 수익률이 큰 의미가 없다. 단기적으로 자산 가격이 출렁인다고 해도 결국은 장기 평균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단기 수익률에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 기금의 장기 투자를 위축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을 평가할 때 1년 수익률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국민연금공단 내에 단기 수익률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해외 연기금들은 운용 성과를 평가할 때 5~10년 수익률에 의미를 둔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은 아예 1년 수익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지낸 A씨는 "캘퍼스는 금융 위기에 27% 손실을 냈는데, 만약 국민연금이 그랬다면 나라가 뒤집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캘퍼스나 캐나다연금 등은 금융 위기 때 단기적으로 손실을 냈지만, 최근 5년·10년 장기 수익률은 모두 국민연금을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