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각층의 기득권을 타파하는 구조 개혁을 하지 않으면 일본의 전철(前轍)을 밟게 될 것이다."
9일 서울 중구 상공회의소에서 '일본 20년 경기 침체의 교훈과 한국의 정책 과제'라는 제목의 세미나장에 모인 국내 경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내놓은 경고문이다.
이날 세미나는 국민경제자문회의·한국경제학회·대한상공회의소가 우리 경제의 현안을 진단하고 정책 방안을 제시하자는 차원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것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현재의 한국 경제 모습이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린 일본형 장기 불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노동·산업 측면에서 구조 개혁을 한시바삐 추진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연금제도 취약한 한국, 일본보다 불황 충격 더 크다"
전문가들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고령화 측면에서 한국 경제가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경우 1994년 65세 인구 비중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진행되며 경제성장이 지체됐다. 1960~70년대 9% 가까운 성장을 했지만 1990년대 초 0%대로 성장률이 급강하했다. 우리나라 노령인구 비중은 2011년 11.4%를 기록해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1960~8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9%가 넘었지만 현재 3%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인구구조 변화를 거론하면서,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노후에 대한 우려로 소비·투자가 줄어 만성적 내수 부족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지면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교수)은 "일본과 달리 연금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채 우리가 일본식 장기 침체를 맞는다면 복지 수요가 늘고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가 급증하면서 충격이 일본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득권 타파하는 구조 개혁 안 하면 일본 꼴 난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노동·교육·산업 등 분야마다 고비용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노조, 의료·법률 등 서비스업계, 정규직 등이 유무형의 진입 장벽을 구축한 채 편하게 이득을 취하는 현실의 장벽을 깨야 한다는 말이다.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기득권에 안주해 이익을 취하는 경제적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activity)를 타파하는 게 경제 구조 개혁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경제 전문가인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우리는 일본 장기 불황 초기처럼 자산 거품이 심하지 않다는 면에서 아직 기회가 있다"며 "노동시장과 서비스산업 등 개혁을 통해 장기 불황의 벽을 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인 해법으로는 해고가 쉽게 이뤄지도록 하고, 성과 중심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은 "시간 외 근무를 줄여 고용을 늘려야 한다"며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은 청년 실업을 해소한 뒤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으로 미래의 먹거리를 마련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장은 "규제는 곱하기에서 0과 같아서 9개를 풀어줘도 한 개가 남아 있으면 모든 일을 그르친다"며 "공무원들에게 규제를 풀었을 때 급여 인상이나 진급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최근 삼성·한화 간 빅딜이 있었는데 삼성에 있으면 '삼성후자(後者)'였을 계열사가 한화에선 '한화전자(前者)'가 될 수 있다는 전망 아래 추진된 것"이라며 "좀비 기업 구조조정뿐 아니라 잘되는 기업들도 적절한 자리를 찾아가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모든 사람이 해결책을 알지만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이라며 "각 분야에서 조금씩 양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