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아인혼 지음|김상우 옮김|부크온|692쪽|3만5000원
“우리는 공매도자들이 승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종종 이런 소리가 나온다. 공매도 대상이 된 기업 측의 말이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판 뒤 나중에 주식을 되사서 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사서 상환할 수 있다. 공매도 투자자로서는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질수록 그 만큼 더 큰 차익을 챙기게 된다. 이 때문에 공매도 대상이 된 기업은 공매도 투자자가 주가를 떨어뜨려고 일부러 루머를 퍼뜨리는 등의 ‘작전’을 구사한다고 비판한다. 실제 그런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우리가 공매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회사에 비판적인 것이 아니다. 그 회사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공매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헤지펀드인 그린라이트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데이비드 아인혼(David Einhorn)이다.
이 책은 그가 얼라이드캐피털사(이하 얼라이드)에 공매도를 주장하면서 주가를 폭락시키기까지 과정을 그렸다. 6년이 걸린 싸움이었다. 얼라이드는 메릴린치증권이 방어에 나서고,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와코비아(Wachovia)까지 ‘강력 매수’를 권하며 목표 주가를 29달러로 설정했지만 결국 0.59달러까지 추락했다.
얼라이드는 보유 자산의 가치를 시장가격 이상으로 부풀리거나 여신 손실률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식으로 회계를 운영했다. 심지어 손실조차 영구적인 것으로 판단되기 전까지는 장부에 넣지도 않았다. 저자는 이런 문제를 들어 얼라이드가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 책을 쓴 목적이 비단 얼라이드의 부정행위를 입증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 정부를 필두로 한 부정행위 규제 당국자들의 무관심한 태도도 겨냥했다고 쓴다. 규제당국과 증권거래위원회, 의회, 검찰, 회사 감사와 이사회, 이를 취재하고 고발해야 할 기자와 편집자들도 비판의 대상이다.
얼라이드전(戰)의 결말을 아인혼은 이렇게 설명한다. “얼라이드는 그렇게 된 건 신용시장의 붕괴 때문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내 대답은 얼라이드가 그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건 역사적인 신용거품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거품 경제를 포함해, 규제당국의 책임 방기가 얼라이드의 잘못된 관행을 키웠다는 얘기다.
이 싸움의 과정을 통해 독자는 기업의 회계 부정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 수 있다. 회사 측의 화려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이 잘못됐고, 무엇이 부족한지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기초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밖에 투자자를 위한 조언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너무 많은 신규 자금이 몰리는 펀드는 늘 경계해야 한다. 갑자기 많은 자금이 투입되면 펀드는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아야 하거나, 기존 투자 대상을 확대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직업 펀드매니저들은 습관처럼 신규 자금을 기존 포지션에 투입하는데 이후 수익률은 목표치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주식 투자를 하기 전에 그 종목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 분명히 알고, 매매 상대방보다 더 많은 분석을 바탕으로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식시장은 비인격적인 곳이다. 주식시장에서 어떤 종목을 매수할 때 우리는 상대방 매도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정보가 부족하다거나 투자능력이 떨어진다고 막연히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무심코 매수 버튼을 누르려는 주식투자자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손을 거둘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오늘 우리에게 어떤 주식을 매도한 사람은 우리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밀접하게 그 주식과 관련된 상황을 주시해 온 사람이고 일찍이 그 주식을 매수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마음을 바꿔 주식을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상대방은 해당 기업 내부인일 수도 있다.”
주식투자자들에게 생생한 사례를 통해 정확한 정보 습득과 신중함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