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존 오키프 영국 런던대 교수와 마이브리트 모세르 노르웨이 트론헤임 뇌연산센터 소장과 에드바르드 모세르 노르웨이 카블리 시스템뉴로사이언스 연구소장 부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뇌가 위치를 인식하는 원리를 알아낸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노벨생리의학상 유력 후보로 꼽혔던 찰스 리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는 아쉽게 받지 못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카롤린스카의대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시각)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존 오키프(75·왼쪽) 영국 런던대 교수와 마이브리트 모세르(51) 노르웨이 트론헤임 뇌연산센터 소장, 에드바르드 모세르(52) 노르웨이 카블리 시스템 뉴로사이언스 연구소장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존 오키프 교수는 마이브리트 모세르 소장과 에드바르드 모세르 소장의 멘토이며 모세르 부부는 1996년 결혼한 부부 사이다.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부부 수상자가 배출된 건 5번째다.

위원회는 “오키프 교수와 마이브리트 모세르·에드바르드 모세르 부부가 뇌에 있는 위치확인시스템(GPS)와 같은 기능을 하는 세포를 처음으로 발견한 공로가 인정됐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존 오키프 교수는 새로운 위치공간을 만나면 뇌의 해마가 작동해 ‘위치 세포(space cell)’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1971년 처음으로 규명했다. 보통 뇌의 측두엽 안쪽의 해마는 사건의 기억을 담당하고, 측두엽 피질은 사실 기억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해마가 단순히 시간과 장소를 기억해 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밝혀냈다. 해마의 신경세포는 단순 기억 외에도 주위 공간에 관한 정보가 함께 저장된다. 기억을 위해 공간 좌표(네비게이션)를 사용하며, 모든 사람과 사건을 공간적 맥락 안에서 기억하고 있었다.

오키프 교수는 해마가 손상된 환자라도 언어능력과 단순 사실 기억은 손상되지 않은 데 착안했다. 해마는 이미 유아기 때 생겨나지만, 사실 기억을 관장하는 능력을 발달시킬수록 해마도 커진다는 동물실험 결과를 도출해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뇌는 또 다른 신경결합을 형성해내고 물리적 구조까지 창출해내는 것이다. 현대의 뇌과학은 장소와 이미지의 결합으로 기억력을 증진시키면서 발전 가능해졌다.

모세르 부부는 오키프 교수 연구에서 한 단계 나아가 2005년 뇌 속의 격자세포(grid cell)를 발견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뇌에도 공간을 자각할 수 있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를 도출했다. 신경세포의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전극을 쥐의 대뇌피질에 삽입하면 쥐가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신경세포의 활동이 기록된 것이다.

신경세포를 쥐의 머리에 점에 위치시키면 작은 연합을 형성하고 삼각형의 꼭지점의 일정한 규칙을 갖게 된다. 격자세포는 공간 내에서의 규칙성이 동물에게 주입된 환경이나 자극에 따른 것이 아니라 뇌 신경세포의 고유한 기능이라는 것이다. 뇌 안에서 설계된 공간적 구조의 요약을 표현하는 것으로, 뇌가 환경에 공간적 구조나 규칙을 부여하는 것을 암시한다.

국내 뇌연구를 이끄는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장은 “모세르 부부는 젊은 과학자들에 속하지만 오키프 교수의 경우 해당 학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유력한 노벨상 후보자로 꼽던 인물”이라며 “최근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해 화제가 된 바 있는데, 이런 연구들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존 오키프는 1939년 미국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1967년 캐나다 맥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영국 런던대(UCL)로 건너가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했다. 1987년부터 교수로 임용됐다.

마이브리트 모세르는 1963년 노르웨이 포스나바그에서, 에드바르드 모세르는 1962년 노르웨이 올레순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1995년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나란히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영국 에딘버러대로 넘어가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했다. 이후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존 오키프 교수 연구실에 합류하기도 했다. 현재 마이브리트 모세르는 노르웨이 트론헤임 뇌연산센터 소장으로, 에드바르드 모세르는 노르웨이 카블리 시스템 뉴로사이언스 연구소장으로 있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지금까지 총 20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단독 수상 38번, 2명 공동 수상 31번, 3명 공동 수상 35번을 기록했다.

부부 노벨상 수상자는 지금까지 5쌍이 나왔다.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은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부부가 받았으며 1935년 노벨 화학상은 프레데릭 졸리오와 이레네 졸리오-퀴리 부부가 수상했다. 이 부부는 1903년 공동수상한 퀴리 부부의 딸과 사위다. 칼 코리와 게르티 코리 부부는 1947년 글리코겐 관련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알바 뮈르달과 군나르 뮈르달 부부는 각각 다른 종류의 노벨상을 다른 시기에 받았다. 알바 뮈르달은 1982년 노벨 평화상을, 군나르 뮈르달은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오키프 교수와 모세르 부부 교수는 노벨상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벨이 새겨진 메달과 함께 상금 800만크로네(약 11억 8000만원)를 각각 반반씩 나눠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