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 지음ㅣ메디치ㅣ327쪽ㅣ1만6000원
구글을 이용하면 안방에서 프랑스 파리 동네 구석구석까지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아마존에서 클릭 한 번으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전자책으로 받아볼 수 있다. 지구촌 인류의 삶과 사고 방식을 뿌리채 흔들어놓은 인터넷은 어디로 진화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 보인다. 3년 전 ‘거의 모든 IT의 역사’로 화제를 모았던 저자가 이번엔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를 내놓았다.
이 책은 인터넷 기술의 진화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기술해 흥미를 더한다. 가령,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윌리엄 쇼클리가 캘리포니아 공대로 자리를 옮긴 것을 두고, 당대 기술 권력이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옮겨간 결정적 계기로 설명하는 식이다. 쇼클리와 함께 일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인텔을 만들었고, 유진 클라이너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 KPCB를 만들었다. 오늘날 IT 창업의 거대한 숲을 이룬 실리콘밸리의 씨앗이었다.
원래 과수원 지대였던 서부가 기술로만 꽃피웠던 것은 아니었다. 사회의 억압과 통제에 대항했던 비트 세대의 탄생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히피 문화, LSD, 코뮌 운동, 언론자유운동, 소비자 운동, 흑인시민권 운동, 여성운동, 게이 해방운동, 베트남 참전 반대 운동을 펼쳤다.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인용해 유명해진 “Stay hungry, stay foolish(늘 갈구하고 바보처럼 우직하게 나아가라)!’라는 경구는 원래 서부 대항문화의 상징적인 잡지였던 ‘홀 어스 카탈로그’ 뒤표지에 적혀 있던 말이다. 이런 대항 문화는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분산된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한 로망으로 이어져 인터넷 진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인터넷의 발전 이면에는 기술 발달뿐만 아니라 독특한 철학과 문화가 작용했다는 점이다. 사람이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상호작용한다는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철학이 있었고, 리눅스를 탄생 시킨 오픈 소스 운동은 다름 아닌 공유의 문화였다. 또한 세밀한 계획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플래너’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면서 혁신하는 ‘해커 정신’ 이 있었기에 인터넷은 인류의 문명을 바꿀 수 있었다.
이 책은 또 인터넷 진화의 고비에 등장한,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비운의 천재들도 꼼꼼히 조명한다. 컴퓨터 운영체제를 가능케 한 C언어의 창시자 데니스 리치, 마우스와 원격 화상 회의의 원형을 보여준 더글라스 엥겔바트 같은 인물들이 그런 경우다.
인터넷의 탄생 과정을 되돌아 보면, 오늘날 인터넷은 여러 면에서 위기에 봉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미국 정보기관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주요 정보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개방과 공유의 인터넷이 아니라 빅브라더의 도구로 전용된 인터넷을 두고 전 세계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은 어느새 빅데이터와 고도의 알고리듬과 결합해 프라이버시(사생활)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저자에 따르면, 미래의 웹은 사이버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과 결합한 거대한 웹의 형태를 띠게 된다. 맛집에서 쿠폰을 직접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한 ‘포스퀘어’나 ‘옐프’ 같은 서비스는 물리적 웹을 보여주는 일부일 뿐이다. 사물도 위치 센서를 이용한 웹이나 전자태그(RFID칩), QR코드를 활용해 거대한 인터넷의 일부가 된다.
또 구글 나우와 같은 개인특화 서비스, 애플의 ‘시리’와 같은 개인 비서 서비스에 이어 인간의 뇌를 닮아가는 시냅틱 웹 서비스까지 등장하면서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아는 기계도 조만간 등장하게 된다. 모든 것이 인간 중심으로 돌아갔던 세상에서 기계와 정보 시스템이 인간과 함께 복잡계를 이룬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앞으로는 기계의 마음과 속성, 네트워크의 본질과 특징을 잘 이해하는 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