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록 KB금융(105560)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중징계를 불러온 'KB사태'는 은행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의혹 공방이 발단이 됐다. 이 행장은 "금융지주가 시스템 교체 비용 문제와 잠재 위험을 의도적으로 축소 누락했다"며 금융감독원에 자진 보고했고, KB금융지주는 "이 행장이 집안싸움을 외부로 터뜨렸다"며 갈등이 확산됐다.

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기존 IBM전산기를 유닉스(UNIX)기종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하고 4월 24일 이사회에 정식 안건으로 주전산기 전환 계획안을 올릴 계획이었다. 이보다 앞선 4월 14일 셜리 위 추이 한국 IBM대표는 이 행장에게 "기존 협상가격인 2000억원대보다 대폭 낮춘 1500억원대에 시스템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고, 이 행장은 이 이메일을 윤웅원 KB금융 부사장(CFO), 김재열 KB금융 최고정보책임자(CIO), 정병기 은행 상임감사에게 보내 검토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행장의 재검토 지시와 정 감사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24일 이사회에서 유닉스로 전환계획은 사외이사진이 찬성하며 그대로 통과됐다. 이에 정 감사는 이사회 직후 감사 착수를 지시했고, 5월 16일 "전산기 교체안건 보고서에서 유닉스기반 시스템의 비용 문제와 잠재 위험요소가 의도적으로 축소 누락된 정황이 발견됐다"며 "자료 왜곡 과정에 지주사가 깊이 관여했다"고 결론내렸다.

이 행장은 5월 19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감사결과 보고서 채택을 안건으로 상정했으나, 사외이사 6명이 채택을 거부해 결국 보고가 무산됐다. 이날 이사회 회의장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이사회 직후 이 행장은 감사보고서를 금융감독원에 보고했고, 금감원은 당일 특별검사에 착수하면서 내부 갈등이 외부로 불거졌다. KB금융은 "이 행장이 특혜시비가 불가능한 사안을 갖고 무리하게 문제를 제기해 갈등을 야기했다"며 "정 감사가 자의적인 감사권을 남용해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갈등은 확산일로였다. 5월 21일 시스템 입찰에는 1개 업체만 참여해 유효경쟁 불성립으로 사업이 중단됐고, 23일과 30일 열린 이사회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금감원 검사 이후까지 전산기 교체 작업은 중단됐다.

6월 9일 감독당국은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중징계를 사전통보했다. 이후 수차례 결정이 연기된 끝에 제재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2일 각각 경징계 제재 결정을 내려 사태는 갈등 봉합 국면으로 흐르는 듯했다. 이후 두 수장은 화해를 시도했으나 템플스테이에서 또다시 갈등을 연출하고 이 행장이 전산담당 임원을 고발하면서 갈등 봉합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결국 4일 최수현 금감원장이 제재심 결정을 뒤집고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중징계(문책경고)를 내리기로 확정하면서 KB 전산갈등 사태는 새 국면을 맞았다.